[우리말로 깨닫다] 먹고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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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먹고 살 만하다
  • 조현용
  • 승인 2014.09.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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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살면서 뭐가 제일 중요할까요? 우리말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답이 나옵니다. 기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자어에서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해서 ‘입고, 먹고,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우선적으로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 만하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은 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우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배부르고 등 따뜻하다’고 해서 뜨끈한 온돌방에서 누워있는 것도 행복으로 쳤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먹는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도덕도, 윤리도 쉽지 않습니다.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사람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구호로 내세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선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사는 사람들도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보릿고개’도 없어졌다고 하고, ‘굶기를 밥 먹듯이 한다’는 말도 이제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을 먹고 사는가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관심사입니다. 유기농 채소를 먹으려 하고,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먹으려 하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0’칼로리의 음료가 인기가 좋아지기도 합니다. 먹기는 먹되, 영양은 전혀 없는 음식을 찾고 있는 겁니다. 굶주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다이어트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일부러 살을 빼기 위해서 굶는다는 말이 이해가 될까요? 예전에는 나온 배를 좀 두드리고 있어야 잘 사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배 둘레가 ‘부’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저 운동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먹고 살 만하다’라는 말에서 저는 많은 반성을 합니다. 그저 먹고 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너무나 많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루 세 끼 먹지 더 먹는가?’라는 말도 합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좀 다르기는 하겠지만 세끼 식사에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차려진 밥상이야 다르겠지만 배부른 것은 마찬가지라는 우리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욕심에 비해서 먹는 욕심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몇 끼를 계속 먹으면 고통이 됩니다. 아무리 귀한 음식이라도 몇 그릇씩 먹게 되면 나중에는 고문이 되고 맙니다. 옷이나 집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먹고 살 만하다’라는 말 속에는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보입니다.

저도 이제 좀 먹고 살 만한 것 같습니다. 겉치장이나 집을 생각해 보면 욕심히 한도 끝도 없겠지만, 먹는 것만 돌아보면 만족하고 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먹고 살 만하면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내 배가 부를수록 다른 이의 주린 배에 관심이 많아져야 합니다. 부른 배를 더 채우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고민도 있어야 합니다.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말이 많지만 단순히 먹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귀한 양식을 가지고 몸과 마음을 자라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 만하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어떤 일을 해야 사람 노릇하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조용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