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믿다와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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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믿다와 묻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1.0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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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서정범 선생님께 우리말을 배울 때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믿다’와 ‘묻다’는 말의 어원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단어를 살펴보면 둘 다 ‘말[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한자를 보면 ‘믿을 신(信)’ 속에 말이 보입니다. 말을 믿는 것입니다. ‘물을 문(問)’이라는 글자를 보면 ‘입’이 들어 있는데 이것도 말과의 연관성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저는 ‘믿다’와 ‘묻다’는 전혀 다른 반대의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묻는 게 많으면 믿지 못하는 것이고, 믿는다면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어원은 같지만 서로 관련성은 없는 단어로 한쪽에 미루어 두었습니다.

스토니부룩 대학의 박성배 선생님께서 ‘믿는다는 말은 변했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셨을 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믿다’라는 말은 사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어휘일 겁니다. 믿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종교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믿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박성배 선생님의 말씀처럼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믿는다는 사람이 그 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변화하되 아름답게 변해야 합니다. 변화의 예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 사람에게 ‘요즘 무슨 일이 있어요? 많이 예뻐졌네요!’라는 말을 합니다.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는 질문도 합니다. 대개 사랑을 하면 예뻐집니다. 사랑을 하면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도 노력하고, 본능적으로도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눈동자의 색이 짙어진다고 합니다. 사실은 관심이 있을 때 동공이 확대되는데, 그래서 더 검은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눈빛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검어 보이기 바랍니다.

믿음은 사랑보다 더 큰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깨달았다는 이가, 깨쳤다는 이가 기존의 모습과 달라지지 않고, 더 집착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믿는 이가 묻지 않는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믿을수록 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깨뜨릴 수 있도록 묻고, 또 물어야 할 겁니다. 이때의 의심은 부정적인 의심이 아닙니다. 본인이 믿지 못하고 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정직한 의심인 것입니다.

두 선생님의 말씀이 결국은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믿기 위해서 끊임없이 묻고, 믿는다면 아름답게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