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자식(子息)’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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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자식(子息)’이란?
  • 조현용 경희대 교수
  • 승인 2013.06.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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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부처께서 아들을 낳았을 때 이름을 ‘라후라’라고 지었다. 사람들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가끔은 겸손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어리석게 보이는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아이에 대한 희망을 담으려고 한다. 예쁘고, 착하고, 씩씩하고,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나에 대한 기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는 장애물이라는 의미였다.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출가하기 전이었던 부처님에게 자식은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집착이 생겼다는 한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후라’가 태어났기에 출가도 쉬워질 수 있었다. 왕위에 대한 부담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에 보면 ‘라후라’ 역시 부처님의 제자로서 깨달음의 삶을 걷게 된다. 아마 부처님도 나중에는 아이의 이름을 ‘라후라’라고 지었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라후라’를 부를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자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쁨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내 깨달음의 근원이 된다.

자식이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우리는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자식(子息)이라는 말의 한자를 살펴보면 ‘식(息)’은 숨을 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숨을 쉬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의 연원을 찾아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나 우선 보기에는 자식은 숨을 쉬고 있는 아이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나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의미도 되는 듯하다. 자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식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자식은 우리에게 아픔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식은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가장 나다운 존재이기도 하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금방 부모 자식 사이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고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말도 부모와 자식이 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닮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식은 많은 점에서 나와 달라 보이지만 실은 모든 측면에서 나와 통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 자식이 애틋한 것은 내가 이미 그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잘 나면 잘 난 대로, 못 나면 못 난 대로 고통이 있다. 그 고통스러움을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자식이 안타까운 것이다. 나와 같이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다그치며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는 어느새 예전의 내 방황을 닮고 있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픈 일이기도 하다.

서양의 성자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더 해 보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온갖 타락 속에 빠져 있자 어머니는 걱정 속에서 주교님을 찾아가 아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달라고 울며 매달린다. 그 때 주교께서 어머니께 해 주신 이야기는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후 시간은 좀 더 지났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성자가 되어 돌아온다.

책을 덮은 뒤에도 ‘눈물의 자식’이라는 표현이 한참 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엇나가는 자식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로 기도를 해 보았을까? 답답해하고 화를 낼 뿐 눈물은 빠져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식이 방황할 때, 타락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눈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화를 내며 못마땅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식을 위한 눈물은 어디에 갔는가? 자식을 제 길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눈물이다.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자식을 바로 세운다.

우리말에는 자식과 관련된 여러 속담이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등의 말은 모두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정답을 이야기한다. 부모는 자식을 어떠한 조건 없이 사랑하는 존재이다.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랑한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