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상태바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 조현용 경희대 교수
  • 승인 2013.04.09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말에서 말과 소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말일 것이고, 자연에서 들리는 것은 소리일 것이다. ‘목소리가 좋다.’라는 말은 말의 의미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음성이 좋다는 뜻이다.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사람의 말을 ‘말’이라고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말을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보지 않고, 그저 귀에 울리는 소리로만 생각한다는 뜻이 된다. 당연히 귀담아 들을 리가 없다. 흘려듣는 말이 되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말이라는 표현 대신에 ‘소리’라는 표현이 쓰인 어휘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잔소리’는 말이 아니라 소리일 뿐이다. 하는 사람의 생각은 교훈이 담겨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이다. 종종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소리일 뿐이다. 잔소리는 소리 중에서도 작은 소리를 의미한다. 부스러기 같은 말이니 핵심이 되지 않는 말을 의미한다. 쓸데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군소리’도 군더더기가 있는 말로 핑계나 변명에 해당하는 말이다. 잔소리를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은 아마도 아이들일 것이다. 부모님은 자식이 잘 되라고, 버릇을 고치려고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의 귀에는 단지 ‘소리’로만 들린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부모는 자신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말’인지 ‘소리’인지. 의사소통은 둘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소리 듣겠다.’라는 말은 ‘큰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한’은 ‘큰’의 의미가 있다. 할아버지는 ‘한아버지’가 변한 말이고, 황새는 ‘한새’가 변한 말이다. 모두 ‘큰’의 의미가 있었다. 황새는 누런 새가 아니다. 황소도 원래는 ‘큰 소’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누런 소를 표현한 것인 줄 알고 ‘황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숨’을 쉬는 것도 ‘큰 숨’을 쉬는 것이다. 우리말에 ‘큰소리 나게 하지 마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나무라거나 소란스럽거나 화가 나는 장면을 소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소리’도 ‘크게 나무라는 말’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 우리는 나무라는 말도 쉽게 ‘소리’ 취급을 해 버린다. 누구를 나무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반성 없는 이는 꾸짖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듣는 이가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나서 타이르고, 나무라야 하는 것이다.

‘흰소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떠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흰소리는 그러한 의미에서 ‘헛소리’와 통하는 면이 있다. ‘헛소리’는 비어있는 소리라는 뜻이니 실체가 없는 허황된 소리가 되는 것이다. 흰소리도 헛소리도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다. 말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을 일에 허풍을 떨고, 남이 귀담아 듣지 않을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것은 다 의미가 없다.

우리말에 ‘말 같은 소리를 해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때도 하는 사람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과 소리의 의미가 분명하게 갈리는 순간이다. 말 같은 소리를 하라는 말은 ‘소리를 하지 말고 말을 하라.’는 뜻이다.

‘잔소리, 한소리, 큰소리, 흰소리, 헛소리’ 등의 우리말 어휘들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쓸데없는 말, 핑계만 많은 말, 소란스럽고 화를 돋우는 말을 피하라는 것이다. 또한 허황되고 의미 없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경고도 담겨 있다. 이런 우리말 표현들을 보면서 나는 오늘 내가 한 말이 ‘말’이었는지 ‘소리’였는지 생각해 본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말을 했는가, 소리를 했는가? 나는 어떤 소리를 했을까?

[조현용 경희대학교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