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호주협의회 최금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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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호주협의회 최금영 위원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4.04.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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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탈북민들의 취업과 창업 도우며 멘토로 활동

“우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에 ‘미리 찾아온 통일의 전령’이 있습니다.”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은 이번 행사에서 꼭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는 아시아·태평양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 평화통일과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행사로, 아태지역 26개국에서 280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중에 탈북민 출신 최금영 자문위원이 있습니다. 탈북 후 한국에서 생활하다 호주로 이주해 브리즈번에서 외식업에 성공했고, 현재 호주로 유입되는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우며 지역사회에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최금영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이렇게 만난 최금영(44) 자문위원은 첫인상에서 생사를 넘나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녀와 가족들에게 탈북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탈북 후 삶에서 그들이 기대한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최금영 씨는 북한 아오지 탄광에서 태어났다. 지주였던 조부로 인해 온가족이 아오지 탄광에 내몰렸고, 아버지가 그곳에서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1997년 2월, 제 나이 18살에 부모님과 4남매가 탈북을 강행했습니다. 아오지에서 온 가족이 탈북한 첫 사례였습니다.”

탈북 루트는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태국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미얀마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게 됐다. 누군가는 일가족이 미얀마에 있다는 사실을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알려야 했기에 최금영 씨는 홀로 길을 나섰다. 지도 한 장 들고 미얀마에서 태국까지 이동해야 하는 험난하고도 절박한 상황이었다.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최금영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주태국 한국대사관으로 이동 중에 가족들이 미얀마에 수감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별자리를 보며 동남쪽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음식은 간간이 주워 먹은 게 다여서 키 164cm에 몸무게는 36kg까지 빠졌었습니다. 씻지 못해 몰골이 흉흉한 채로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대사관 직원이 저에게 ‘할머니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더군요.” 

그녀 스스로 거울을 보기에도 피부가 처진 채 새까만 할머니의 몰골이었다. 무려 석달간 산속을 헤맸기 때문이다. 오직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버틴 것이다. 중국에서는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혀 첩첩산중으로 팔릴 뻔했고 미얀마 내전 지역에서는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와 발아래로 나뭇가지가 떨어지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위기와 긴장의 날들이었다. 

최금영 씨의 투혼과 주태국한국대사관의 신속한 도움으로 미얀마에 구금된 가족들을 구할 수 있게 됐고,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이자 최씨의 아버지는 ‘우리의 영웅 최금영이 왔구나’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이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온 최금영 씨는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고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다. 그녀는 대학시절에도 억척스레 일했다. 중국어 동시통역에서 사무실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해 대학 졸업하기 전에 2억원을 모았다. 결혼할 때 시부모가 보태준 1억원을 합해 위례지역 아파트를 3억원에 샀는데 15억원까지 올랐다. 최씨는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호주 브리즈번에 이주해 창업한 외식업이 성공하며 정착했다.

그녀는 사업가로 성공해 탈북민을 돕는 탈북민이 됐다. 호주에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가며 탈북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멘토가 된 것이다. 현재 그녀가 돕고 있고 그녀에게 의지하는 주변 탈북민 수는 100명이 넘는다. 서정배 민주평통 호주협의회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 최금영 씨에게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될 것을 권했다. 그렇게 최씨는 탈북민에서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됐다.

호주로 이주하는 탈북민들은 최금영 씨를 보고 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최씨가 운영하는 스시 체인점 ‘아리’에서 일하거나 근처에서 창업하며 호주에서의 삶에 연착륙하고 있다. 탈북민이 창업할 경우 최씨는 현지의 법률적 문제까지 지원하며 뒤를 봐주고 있다. 새로운 삶의 희망지가 되도록 총체적으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최금영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호주에 온 탈북민 대부분은 저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합니다. 30km가량만 떨어져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일가족이 함께 탈북한 경우는 덜하지만 홀로 온 경우에는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홀로 생활하는 외로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바빠 시간에 쫓겼지만, 생활고가 해결된 후엔 가족과 친구에 대한 향수병을 앓습니다. ‘돈 벌면 북에 둔 가족을 데려와야지’라고 하지만 초기에 수백만원 들던 탈북 비용이 요즘에는 1인당 1억원도 어렵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며 새로운 삶을 선택한 최금영 씨는 탈북민들이 어떤 심경이라는 걸 잘 안다. 새로운 삶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목숨을 건 탈북 이후에도 낯선 세계에 대한 적응은 큰 문제로 남는다. 특히 탈북에 대한 보상이 고작 사회적 냉소라면 어떡할 거냐는 물음도 있다. 탈북민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민족통일은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최금영 씨와의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은 다가올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탈북민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금영 자문위원과의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최금영 자문위원과의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현재 약 3만 4천여명의 탈북민들이 한국에 있는 가운데 최금영 자문위원을 보면서 저는 ‘미리 찾아온 통일의 전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일 비용과 부담은 탈북민들의 역할에 따라서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나 대한민국의 목소리보다는 탈북민들을 통해서 남한에 대한 긍정적 현실과 미래의 희망이 제시될 때 훨씬 더 정서적 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커진다는 겁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탈북민을 위한 제도적 지원과 정서적 공감대 확산은 중요합니다.” 

고 부의장은 이를 위한 민주평통의 역할도 강조했다. “탈북민과의 정서적 통합에 대한 캠페인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들은 잘 안 나타납니다. 한국에서 잘해줄 것을 기대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왔는데 실제로는 사회적 편견의 시각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냉소적 분위기에 대한 전환 운동을 민주평통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금영 자문위원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의 보배입니다. 민주평통 호주협의회의 자문위원으로서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고 대한민국의 신뢰를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민주평통은 제2의 3의 최금영씨를 발굴해 나가야 합니다.”

민주평통 호주협의회(회장 서정배)는 탈북주민 멘토로 알려진 최금영 자문위원과 협력해 올해 6월부터 1년간 탈북민을 위한 초기 정착 안내 및 숙박 지원, 구직 지원, 호주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1:1 멘토링, 유학생 장학금, 교민사회에 소통 기회 확충 등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지난 4월 25~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4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왼쪽부터) 고상구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최금영 자문위원,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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