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거짓’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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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거짓’을 말하다
  • 조현용 경희대 교수
  • 승인 2013.05.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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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공부하면서 ‘거짓’이라는 단어가 늘 신경이 쓰였다. 우리의 삶이 온갖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이라는 말의 어원을 알면 한국인의 거짓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고, 거짓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학자들의 논의를 보면서 느낀 것은 거짓은 겉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거짓을 분석해 보면 ‘겆’을 찾아낼 수 있다. ‘겆’은 ‘거죽’과 통하는 말인데, 살이 아니라 겉에 있는 가죽이라는 뜻이다. 거죽은 모음을 바꾸어 ‘가죽’이라는 어휘가 되기도 한다. 우리말에는 이와 같이 모음을 바꾸어 어휘를 만드는 예가 많다. ‘넣다/놓다’, ‘앉다/얹다’, ‘마리/머리’, ‘맑다/묽다’ 등이 대표적이다.

‘겉’에 해당하는 어휘 중에서 ‘기역’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보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떤 어휘의 어원을 찾을 때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휘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첫 자음이 같다고 해서 어원이 같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겉, 가죽, 거죽, 껍질, 껍데기, 거품, 까풀’ 등의 어휘가 모두 동일한 어원의 어휘로 보인다. 또한 ‘콩깍지’의 ‘깍지’도 겉이라는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알맹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짓을 ‘겉’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면 거짓의 의미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 즉, 거짓은 겉으로만 하는 것이고, 진솔한 마음을 담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거짓은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마치 속에 있는 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속이다’라는 말의 어원이 ‘속에 있는 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민간어원으로 보이지만 발상은 재미있다. 종종은 민간어원이 우리에게 반성과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거짓은 속이 비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헛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맹이가 없는 말이 되고 만다. 우리는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속에 있는, 꽉 차 있는 말을 해야 한다. 거짓의 반대말이 ‘참’인 것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어원적으로 ‘차다’와의 관련성을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거짓의 의미에 미루어 보면 ‘가득 차 있는 것’, ‘속이 차 있는 것’이 ‘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찹쌀, 찰지다, 참외, 참기름’ 등에서 그러한 의미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가득 차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볼 수 있다. 속이 비어 있는 것은 참이 되기 어렵다.

우리는 거짓을 말하지 말고, 속에 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고는 말한 대로 행동해야 거짓이 아니게 된다.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말은 노력해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행을 일치하게 되어 있다. 속마음은 자연스럽게 표정에 나타나고, 말투에 묻어나게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사람들은 곧 눈치 채고 만다. 어찌 보면 남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언행일치를 하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닌 척 내 속마음을 속이고, 사람들 앞에서 겉으로 다른 표정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에 있는 말을 하고, 그대로 행동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특히 긍정적인 마음은 더 보여주면서 살았으면 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고 만나면 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을 표현하면 된다. 부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전화를 해서 안부를 여쭈면 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내 아픈 마음을 전달하고 도와주면 된다. 슬픈 사람은 위로해 주고, 잘 한 사람은 칭찬해 주고, 힘든 사람은 격려해 주면 된다. 그것이 내 진실한 감정이다. 내 속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거짓을 없애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글=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