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쉰다는 말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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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쉰다는 말의 의미는?
  • 조현용 경희대 교수
  • 승인 2013.05.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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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쉬다’가 ‘숨을 쉬는 것’과 ‘휴식’의 의미인 것은 흥미롭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어에도 ‘쉬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식이라는 단어에는 몸이 쉬는 것과 숨을 쉬는 것이 합쳐져 있다. 즉, ‘휴(休)’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쉰다는 의미이고 ‘식(息)’은 숨을 쉰다는 뜻이다. 쉬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말의 ‘쉬다’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바쁜 일이 끝났을 때 ‘한숨을 돌리다’라는 표현을 한다. ‘한숨’은 큰 숨을 쉰다는 의미로 걱정이 있을 때나 휴식을 취하게 될 때 하는 행위이다. 왜 걱정이 있으면 한숨을 쉬게 될까? 그것은 한숨이 치유의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숨을 쉰다는 것이 곧 치유의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치유라는 말이 유행인데, 숨만 잘 쉬어도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예전부터 우리는 숨을 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도 다 쉬는 행위이다. 자신의 호흡을 들여다보는 것을 명상이라고도 하고, 참선이라고도 한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호흡 조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가나 간단한 스트레칭에도 호흡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참선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깨달음과 비워냄을 위해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일지 모르나 내가 볼 때 그들은 참된 휴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단순히 논다는 의미가 아니다. 쉬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멈추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쉰다고 하는 것은 숨을 돌리고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쉬는 것이 바빠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쉴 때도 무척 바쁘다. 손에는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으면서 쉰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 세상에서는 쉬는 것도 바쁘다. 쉴 때 할 일을 빼곡히 적어놓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쉬면서 다음 일을 계획한다고도 한다. 정치인들도 휴가를 떠나며 무슨 구상을 한다고 하면서 가기도 한다. 차라리 푹 쉬고 돌아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된 휴식은 바빠서는 안 된다.

나는 쉬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길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네카의 ‘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이 짧은 것은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다. 늘 무언가에 쫓겨 살면서, 할 일에 치여 살면서 인생을 길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사는지, 또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늘 물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바로 쉬는 시간이다.

우리는 숨이 차게 달려왔다. 그래서 늘 숨이 가쁘다. 모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숨이 가쁜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숨조차 쉴 수 없다는 표현을 자주 하기도 한다. ‘숨을 거두었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은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쉴 수 있어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다. 숨을 쉬는 것, 그리고 쉬고 나서 새롭게 일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쉬는 시간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단순히 누워 뒹구는 것이 휴식은 아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뉘우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만큼 깊고 소중한 휴식은 없다. 앞으로의 일보다는 지나온 일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의 시작이다. 잘 쉬고 나면 새 희망을 안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 지혜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참 휴식인 셈이다.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지쳐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좀 쉬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길게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말 ‘쉬다’가 보여주는 세상이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