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 北형제 그리는 사할린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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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北형제 그리는 사할린동포
  • 연합뉴스-민족뉴스-
  • 승인 200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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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시에 거주하는 신원순(67)
할머니의 꿈은 고국에 영주귀국해 사는 것보다 지난 58년 사할린에서 북한으로 건너
간 오빠(70)와 여동생(65)을 만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로 있는 아들(46)과 동대문에서 일하며 3개월마다 사할린으로 돌아가
비자를 재발급받아 입국하는 딸(51)을 만나려고 최근 방한한 신 할머니는 8일 "인생
이 너무 기구하다"고 말문을 열며 "북한에서 고위 군관으로 있는 오빠와 가난에  절
어 살고 있는 동생과 헤어진 지 46년 됐는데 딱 한번 얼굴을 봤다"며 울먹였다.

    한인 250여 명이 살고 있는 로스토프주 한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신 할머니는
"영주귀국을 못하는 대신 생활비라도 한국 정부가 제공해 준다면 그 곳에 남아 북에
있는 오빠와 동생을 생각하며 외화벌이 나온 벌목공, 의사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외화벌이꾼들로부터 '어마'(어머니)로 통하는 신 할머니는 남몰래  식사대
접은 물론 옷, 약품, 약간의 돈 등을 제공하는가 하면 고려인들의 위상제고와  권익
향상을 위해 뛰기도 했다.

    "5~6년 전까지 의사들이 돈벌이를 나왔었는데 뚝 끊겼다. 올해  다시  의사들이
나올 것이란 말을 들었다. 이번엔 신분이 좋은 부부 의사들이라는데..."

    "지금까지 북한 동포들을 많이 도왔지만 오빠와 동생에 대한 소식을 한 번도 묻
지 않았다"며 이번엔 꼭 물어볼 생각이 있는 듯 말끝을 흐리던 신할머니는  "한가하
게 피붙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불법체류자로 숨어 사는 큰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북 영일군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신 할머니는 40년 부친 신진국(80년
작고)씨가 하루 아침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뒤부터 기구한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외할아버지댁에 얹혀 살던 3형제는 3년 뒤 극적으로 돌아온 부친을 따라 사할린
으로 갔고, 그 곳에서 해방을 맞는다.

    사할린 글라스노고르스크 탄광 마을에서 3학년까지 다니며 성장한 신  할머니는
동생 7명이 생기면서 과중한 학비 부담 때문에 52년 결혼, 유주노사할린스크시로 거
주지를 옮겼다.

    60년 탄광이 폐쇄돼 브이코프시에 위치한 탄광으로 이주하기까지 오빠와 동생이
북으로 가는가 하면 동생 2명이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졌다.

    "58년 북한 사람들이 와서 대학은 물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짜로  주겠다고
회유했지. 그때 배고픔에 시달리던 동포 2천여 명이 북한 가는 배를 탔어."

    이혼과 재혼이라는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한 신 할머니는 82년 모친이  사망
한 뒤 남편 권윤기(2002년 작고)씨와 가족을 끌고 하바로프스크시로 이주했고, 다시
84년 현재 거주지로 옮겼다.

    지난 44년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남편 권씨는 신 할머니와 함께 지난  90년부터
총영사관을 찾아다니며 영주귀국을 꿈꾸어 오다 러시아 땅에서 잠들었다.

    "내가 정말 바보였었다. 남편을 영주귀국시킬 수 있었는데 영사관 관계자들  말
만 믿고 있다 이렇게 됐다. 이제 소원은 8형제가 한 상에 앉아 밥 한끼 먹어보는 것
이다."

     사할린 제9동양어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다 현재  유주노사할린스크시  교육부로
들어가 일하고 있는 숙자(60)씨를 비롯한 원우(58), 옥자(56), 원자(53),  금자(50)
씨 등 신 할머니의 동생들은 사할린에 남아 북한에 있는 오빠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
다.

    오는 3월 2일 이한할 예정인 신 할머니는 "우리 민족의 기구한 역사가 우리  가
족의 역사 또한 기구하게 하였다"며 "아들이 불법체류가 아닌 떳떳한 한국인으로 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ghw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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