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입장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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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인 입장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1.04.04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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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치민총영사관 김재천 영사

1995년 베트남 호치민시는 정전이 수시로 일어났다. 가로등도 거의 없었고, 도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점령했다. 한마디로 호치민은 ‘암흑의 도시’와 같았다.

이런 낙후한 곳에 20대 젊은 외교관이 호치민총영사관으로 파견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한 그는 베트남 전문이라는 이유로 본인 업무 범주 외에도 다른 영사의 업무지원, 민원문제 해결, 한국대표단 안내 및 통역 등 수많은 일들을 해야 해 날마다 밤을 새워야 했다.

그가 바로 제7회 '발로 뛰는 영사상'에 선정된 김재천 호치민 (민원)영사이다. 삼성물산 개발상품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외교관으로서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호치민총영사관 부영사를 시작으로, 베트남대사관 2등 서기관 , 호치민총영사관 영사로 현재  베트남에서만 10년동안  근무하고 있는 그는 현지 영사들과 한인사회에서 베트남 전문가로 통한다.

김 영사는 그동안 사기범 한국 송환, 탈북자 한국 귀국 등을 비롯한 사건처리, 태국 쓰나미 한국인 시신수습 등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 왔다. 베트남 한인사회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한인들을 위한 그의 마음이 통하였을까? 많은 호치민 한인단체장들은 전화와 편지로 본지에서 선정하는 ‘영사상’ 후보자로 그를 추천해 왔다.

김 영사는  수상소감에서 “호치민시 동포들의 추천으로 받는 상이어서 그 어떤 상보다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한인동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동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영사의 가장 큰 공로로 공관소속 호치민한국학교와 하노이한국학교 건립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당시 교육담당 영사였던 김영사는 “호치민에 한국학교가 없어 베트남 학교에 다니는 한인 학생들이 사회주의식 교육과 왜곡된 한국역사를 배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학교의 높은 학비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 등을 인식하고 많은 한인들과 함께 호치민한국학교를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김영사는 학교건립을 위한 자본금이 없는 것을 감안해 과감히 총영사관학교로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했고, 학교 건축을 위해 공관의 명의로 하천부지를 저렴한 가격에 임차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1998년 설립된 호치민한국학교는 설립 초기 80여명이던 학생 수가 지금은 1,200여명으로 증가했다. 해외 한국학교 중 가장 모범적인 학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인 것. 그는 또한 호치민뿐만 아니라 하노이 한국학교 설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재천 영사는 2004년 태국을 강타한 쓰나미로 실종된 한국인 시신 수습 사건을 맡기도 했다.

5,000구의 시신 중에서 한국인 시신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그를 비롯한 팀원들은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면서도 실종자 10명 중 9명의 시신을 확인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김재천 영사는 “10일 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시체 옆에서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가 썩기 시작해 전염병 위험에까지 노출되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위험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베트남대사관에서 2010년 8월 다시 호치민총영사관으로 재부임한 김재천 영사는 여전히 한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모의선거에서 김 영사가 재부임한 후 1개월 만에 기존선거인단이 200여명에서 1,000여명으로 늘었다. 그는 선거참여를 위해 독려메일을 줄기차게 보냈고, 목사들의 조찬기도회에 참석했으며,  한인원로들에게 협조요청 하는 등 꾸준히 홍보를 진행했다. 그 덕분에 모의선거단 모집수와 실제투표율 등 종합적인 결과로 도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재천 영사에게 베트남은 운명적인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사로 근무하면서 한나라에서 10년 동안 생활했을 뿐 아니라,  호치민한국학교 초대 교사인 지금의 부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이 영사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민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민원인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김재천 영사는 오히려 8만명 호치민 한인들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전했다.


<약력> 1966년 생, 199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졸업, 1992년 삼성물산 개발상품팀 근무, 1993년 외교부 입부, 1995년 주호치민 총영사관 부영사, 2001년 영사과, 동남아과 근무, 2009년 재단법인 한-아랍 소사이어티 사무국장, 2004년 주베트남 대사관 2등 서기관, 2010년 주호치민총영사관 영사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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