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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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07.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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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해의 빛은 여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겨울에는 햇빛이 반갑고, 여름에는 햇빛이 싫을 수 있습니다. 햇빛은 언제 제일 아름답냐는 질문에 저랑 제일 가까운 사람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모든 빛이 그대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부딪고, 그 사이로 스미듯 새어나오는 빛은 왠지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어둑한 숲길에 한 줄기, 두 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빛 따라 내 앞 길도 밝아집니다. 

해와 관련이 있는 말로는 햇빛, 햇살, 해님, 햇볕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빛은 밝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햇빛은 해가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빛에서 나온 말로는 ‘비추다’가 있습니다. 즉 비추다의 어원은 빛입니다. ‘비추다’는 위에서 보는 느낌입니다. 물론 인공적인 빛은 모든 방향에서 비추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해는 저 위에서 우리를 향해 비춥니다. 아래서 보는 느낌으로는 ‘비치다’가 있습니다. 비치다의 어원 역시 빛입니다. 햇빛이 나뭇잎이나 얇은 천 사이에 스며들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빛을 남깁니다. 비치는 것입니다. 

‘햇살’은 빛의 줄기라는 느낌입니다. 나무의 줄기처럼, 그리고 빗줄기처럼 죽죽 뻗는 모습입니다. 곧은 느낌이지요. 우산의 살도 같은 느낌이지요. 자전거 바퀴에도 살이 있습니다. 옛 부채에도 대나무로 만든 살이 있었습니다. 살은 그런 느낌입니다. 살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화살입니다. ‘쏜살같이’라는 표현에도 화살이 들어갑니다. 예전에는 화살이 제일 빠른 움직임이었을 겁니다. ‘슝슝’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화살은 두려움입니다. 저는 햇살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화살이 아니라 웃음 짓게 하는 빛을 봅니다. 

‘해님’은 자꾸 ‘햇님’으로 쓰게 되는 말입니다. ‘-님’은 접미사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어근 사이에 들어갑니다. 해님을 [핸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님’이 접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핸님]이라는 발음이 익숙합니다. 해님은 달님, 별님, 하느님과 연결이 되는 단어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천체에 경외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외심이라고 하는 게 두려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님, 달님, 별님은 모두 친근하고 다정스러운 느낌입니다. 아마 ‘하느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종교에서 가져다 쓰기 전까지는 그저 무서운 느낌이 아니라 우리에게 한없이 다정한 대상이었을 겁니다. 저는 해님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가깝고 다정함을 느낍니다.  

‘볕’은 온도입니다. 땀 뻘뻘 흘리게 하는 느낌보다는 추운 겨울 담장 밑으로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에게 비추는 온기의 느낌입니다. 볕이라는 말이 쓰이는 단어로는 ‘불볕’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불볕의 온도에서는 뜨거움이 확 느껴집니다. 햇볕과는 다른 온도입니다. 햇볕이라고 하면 이솝 우화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찬바람으로도 날리지 못하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에게 햇볕은 뜻밖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햇볕은 두텁고 무거운 외투를 저절로 벗게 합니다. 왠지 기분 좋은 웃음이 납니다. 달리 말해 햇볕은 무겁고 외로운 우리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합니다. 

나뭇잎 사이를 비추는 빛줄기를 일본어에서는 코모레비[木漏れ日]라고 합니다. 쨍쨍한 빛이 아니라 나무 사이를 스며들며 비추는 빛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잎의 푸름을 더욱 푸르게 밝히는 빛. 빛은 햇살이 됩니다. 여름에는 햇빛 비추는 숲길에서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고맙고, 겨울에는 마음마저 녹이는 볕이 고맙습니다. 해가 빛이 되고 온기가 됩니다. 우리를 밝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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