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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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04.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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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말에는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위로하는 말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액땜으로 생각하라’, ‘그만하기 다행이다’ 등이 있습니다. 분명히 위로의 말인데 ‘다행’이라는 표현을 써서 어색한 면도 보입니다. 다친 사람에게 다행이라는 표현이 안 어울려 보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더 큰 고통이 오지 않았음은 다행이기도 합니다. 액땜을 한 거죠. 이왕 다치거나 병이 든 것이라면 푹 쉴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표현도 씁니다. 이 때 쓰는 표현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입니다. 넘어지면 아프고 힘이 듭니다. 일단 몸에도 고통이 오지만 마음에도 고통이 옵니다. 남에게 뒤쳐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두려움이 됩니다. 한 번 넘어지면 다시 만회하기 어렵습니다. 

달리기 경주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단거리 경주라면 이미 승부는 난 것이죠. 도저히 다시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절망 그 자체일 겁니다. 물론 다시 일어나서 승부에 상관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 역시 남과의 승부보다 자신과의 승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단거리 경주라도 승부가 단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좌절에서 헤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단거리 경주도 한 번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경주는 나와의 경주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이전의 나와 함께 달리는 겁니다. 기쁜 경주였으면 합니다. 늘 초조한 경주가 아니라 늘 달리고 싶은 경주였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장거리 경주라면 한 번 넘어지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에 마라톤 경기를 보는데, 뒤쳐져서 다시는 못 따라올 것 같던 선수가 끝내 1등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절대로 못 따라올 거라고 해설하던 사람의 당황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운동경기에서는 특이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발목이 삐면 참 아픕니다. 다시 일어나서 뛸 힘조차 얻지 못합니다. 그 때는 좀 쉬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럴 때 좀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 경치도 보고, 내 주변에서 응원해 주던 사람들도 돌아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아무래도 달리다 보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휙휙 지나가며 보게 됩니다. 사물도 그렇지만 사람을 대충 보는 것은 문제입니다.

넘어져서 그 김에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그 동안 뛰어온 길을 되살펴 봅니다. 문득 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게 뛰어왔을까 서글퍼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실컷 울어버리는 것도 좋습니다. 눈물도 인간의 특권입니다. 주변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나보다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날의 내가 미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넘어진 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좌절이라든가 절망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되는 상황도 아닙니다. 오히려 고마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위로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힘들지만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될 겁니다. 인생사 새옹지마이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생깁니다. 알 수 없기에 지금의 상황을 고마워합니다. 힘들다면, 넘어졌다면 그 김에 쉬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문득 바라본 하늘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지. 아니면 손을 내밀어 주는 고마운 사람을 만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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