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몸살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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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몸살이 나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1.06.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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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갑자기 몸살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해졌습니다. 몸에 살이 붙어서 생긴 말이니 살의 의미만 알면 될 것 같았습니다. 전부터 저는 몸살은 몸에 살을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을 맞는다는 말은 주로 무속 등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살을 맞아서 죽기도 하니 무서운 말이 아닐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몸살의 어원에 대해서 공부해 보면서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서 좀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몸에 살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몸살의 뜻을 우선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살을 맞는다고 할 때 살은 사전에서는 한자로 나옵니다. 살(煞)이라는 한자의 의미는 죽인다는 뜻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흉신(凶神)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흉신은 흉물스러운 좋지 않는 귀신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보면 살을 맞다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찾아보았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관련된 관용어도 여러 가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이 끼다’나 ‘살이 붙다’라는 말은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해치는 불길한 기운이 들러붙는다는 의미입니다. ‘살이 뻗치다’나 ‘살이 서다’, ‘살이 오르다’라고도 표현합니다. ‘살이 가다’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공교롭게 해를 입다.’라는 뜻입니다. ‘살이 세다’는 말은 운수가 나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표준국어사전에서는 예로 ‘결혼한 남자마다 단명을 하니 참으로 살이 센 여자다.’를 들고 있을 정도로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보니 살을 맞았다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몸살은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심하게 앓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몸살을 앓았다고 표현할 때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몸살의 살이 살을 맞다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몸살, 감기 정도로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는 증세라는 의미입니다. 

코로나 사태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끝은 백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완벽해 보이지는 않지만 백신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연령에 따라 백신 접종의 속도도 차이가 납니다. 아무튼 모두 일상의 소중함으로 돌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 접종 대상이 아니어서 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만,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맞아야겠다는 생각에 주변 병원에 잔여백신 예약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곧바로 연락이 와서 아내와 함께 백신을 맞게 되었습니다. 접종의 절차는 간단했습니다. 접종 후에 이상 증세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미리 준비한 약을 먹었습니다. 저는 접종 부위만 며칠 간 뻐근하였는데, 아내는 그야말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고열과 두통, 근육통으로 입맛까지 잃을 정도였습니다. 
 
아내도 이틀 정도 고생을 하고 나니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몸에 잡균이 없으면 백신의 후유증이 심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의학적 정확성은 모르겠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백신을 맞고 아무 후유증이 없었다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후유증은 주로 젊은 사람에게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동안 우리가 알고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균이 몸속에 들어와 쌓여 있죠. 독감 주사를 자주 맞은 사람, 예방 주사를 많이 맞은 사람은 어쩌면 어떤 균이 들어와도 이겨낼지 모릅니다. 어릴 때 땅에 떨어진 것 같이 아무거나 먹고 힘들게 살았을수록 균에 저항력도 강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오히려 백신에는 적응이 잘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쪽이 좋은지 모르겠네요.

예방 주사는 사실 좀 아파야 정상이 아닐까 합니다. 예방이라는 게 아예 생기지 않는 게 아니라 약하게 경험하고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맞고 몸살을 앓은 사람은 공통적으로 몸에 균이 들어왔음을 확실히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백신의 효과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오히려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제대로 맞은 것인지에 대해서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참 묘한 세상입니다. 백신 하나에도 이렇게 세상사가 다 담겨있습니다. 바이러스를 세상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해 보면 세상의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들의 아프지만 강인함을 알 수도 있습니다. 몸살을 앓고 나면, 고열에 오한을 겪고 나면 그만큼 자라납니다. 내 몸속에 있던 나약함도 치유할 겁니다. 몸살은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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