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새해에 액을 막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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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새해에 액을 막는 방법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8.02.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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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살다보면 예기(豫期)치 않은 나쁜 일이 생깁니다. 참 괴롭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나 원망스러운 일도 많습니다. 답답한 마음입니다.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고, 숨을 쉬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가슴을 치게 되고, 가슴을 쥐어뜯게도 됩니다. 내가 특별히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못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나에게 험한 일이 닥칩니다. 하물며 내 가족에게도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나기도 합니다. 억울한 마음뿐입니다. 원망이 가득해 집니다.

나쁜 일이 나쁜 사람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민입니다. 나쁜 사람에게만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모두 착한 일만 하지 않을까요? 종교에서도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종교에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복이나 벌은 선행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길 때 <액(厄)>, <액운(厄運)> 등의 표현을 씁니다.

<액>은 재앙이나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액이 끼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사이에 무엇이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 삶에 액이 들어왔다는 의미겠지요. 잘 흘러가던 물에 돌멩이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액이 끼면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액풀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마치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액을 천천히 풀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운이 트입니다.

우리말에서 액은 주로 <액막이>나 <액땜>이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이것은 오는 액을 막거나 작은 액으로 큰 액을 때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액은 미리 완벽히 막기도 하지만 대개는 더 큰 액을 작은 곤란으로 막습니다. 즉 액은 들어오기 전뿐 아니라 들어 온 후에 막기도 하는 겁니다. 액이 아주 안 들어오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액이 아주 안 들어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인생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하였을 겁니다. 액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민요인 <액막이 타령>은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입니다.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사월에 막고, 삼월 사월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에 다 막아낸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여차 액이로구나’에서 보면 액은 우리 삶에 미리 들어와 있습니다. 들어 온 액을 다음 달에 막아내는 겁니다. 액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액땜은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긴다는 뜻입니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가벼운 곤란’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경우도 많습니다. 단지 앞으로 닥칠 곤란, 고통보다는 작다는 의미죠. 아니 어쩌면 액땜은 희망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액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잃어버려도, 몸을 다쳐도 액땜입니다. 더 큰 고통을 막아준 것이니 힘들기는 하지만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살면서 나쁜 일은 생깁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없을 수 없겠죠. 액은 들어옵니다. 이 액을 막는 일은 일단 액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분노하고, 한탄하고, 좌절만 해서는 액을 막을 수 없습니다. 들어 온 액을 바라보면서 더 커지기 전에 막으려고 해야 합니다. 막힌 것이 있다면 뚫고, 묶인 것이 있다면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액이 막아집니다. 그러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