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신문
편집 : 2018.5.21 월 17:32
오피니언
[우리말로 깨닫다] 말을 놓다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06  10:52:0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놓다>의 반대는 <잡다>일 겁니다. 잡는 것은 집착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조금 더 세게 말하면 붙잡는 것을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꽉 쥐고 있는 것을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서 집착의 종류도 달라질 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잡고 있나요? 꽉 쥐고 있을 때는 빈틈도 공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답답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놓다>는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제일 대표적인 우리말 표현은 <마음을 놓다>일 겁니다. 안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걱정이 많을 때 우리는 마음을 잡고 있습니다. 심장이 오그라든다는 말도 합니다. 긴장하는 거죠.

<마음을 내려놓다>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더 구체적으로 욕심이나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놓을 뿐 아니라, 아래로 내려놓는 것이니 체념할 것은 체념하는 모습입니다. <체념>은 포기가 아니라 내 욕심을 거두어들이는 느낌의 단어입니다. 족한 줄 아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 표현을 볼 때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언지 살펴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할 때는 자신의 명예나 권력, 부 등 그동안 집착했던 세상의 일을 놓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제발 목숨은 내려놓지 마세요. 결심을 말할 때 <죽어도>라는 표현은 삼가기 바랍니다. 목숨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음을 잡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요. 어디에 둘 데 없는 마음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쁠 리 있겠습니까? 마음을 잡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음을 잡는 것에 반대는 마음을 놓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마음을 흩어트린다는 말이 반대가 되겠네요. 정신이 산란하다는 말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마음잡고 하는 일에는 열정도 있고, 신명도 있습니다. 마음을 잡되, 지나친 집착에 빠지면 안 된다는 뜻으로 마음을 놓다가 쓰였을 겁니다.

말을 공부하는 저는 <말을 놓다>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내가 언어에서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말을 놓는다는 말은 말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을 놓다의 반대는 말을 높이는 겁니다. 둘이서 긴장하며 말하다가 마음이 편해지고,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 말을 놓게 되는 거죠. 이 말은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을 놓으시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친구들 관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말을 놓자고 합니다.

높임말이 좋은 것처럼 말하지만 친구 사이나 가까운 사이에 말을 놓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은 서로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요?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어도 말을 놓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언어 표현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해’라는 표현이 널리 쓰입니다. 해는 분명 아랫사람에게 주로 쓸 수 있는 말이지만, 가까운 사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말을 놓을 수 있는 장치인 셈입니다.

말을 놓는다고 서로를 공경하는 마음마저 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말을 놓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긴장을 없애자는 의미이지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편한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놓아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조현용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
1년 만에 함부르크 입항하는 대한민국 국...
2
[인터뷰] 최귀선 월드옥타 부다페스트 지...
3
주이스라엘대사관, 예루살렘 교민 안전 긴...
4
가브리엘라 아르헨티나 부통령과 이영수 외...
5
선양한국인회, 제38주년 5·18민주화운...
6
독도사랑협회, 5월 17~20일 울릉도와...
7
5·18 민주화운동 제38주년 기념식 거...
8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팀 종이나라박물관...
9
싱가포르한인회장 배 세계테니스클럽 대항전
10
케이프타운 찾은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오피니언
[역사산책] 고종의 광무개혁과 신식 금융제도
조선 말기 고종은 두 차례의 근대화를 시도했다. 첫 번째는 1880년대 청나라의 속방화
[법률칼럼] 보이스피싱 (2)
그런데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들은 그러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구조를 잘 알 수
[우리말로 깨닫다] 스승과 제자 이야기
스승과 제자라는 말은 선생님과 학생에 비해서 무게감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를
한인회ㆍ단체 소식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03173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711호(내수동, 대우빌딩)  (주)재외동포신문사 The overseas Korean Newspaper Co.,Ltd. | Tel 02-739-5910 | Fax 02-739-5914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아00129 | 등록일자: 2005.11.11 | 발행인: 이형모 | 편집인: 이명순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명순 
Copyright 2011 재외동포신문. The Korean Dongpo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