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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죽어도 용서 못해!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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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2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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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나라 사람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라는 표현을 죽는다는 말 대신 사용합니다. 매장(埋葬) 문화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무덤에 들어가면 흙을 뿌리기 때문에 눈에 흙이 들어가는 것이 죽음을 의미했을 겁니다. 한편 일본어에서는 ‘눈동자가 하얘져도’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화장(火葬) 문화를 보여줍니다. 불 속에서 모든 것이 재로 변화기 때문에 생긴 표현일 겁니다. 두 표현 모두 눈이라는 말을 쓴 것은 눈을 감는 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이별하는 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하지 않겠다든지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죽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얼마나 미우면 저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에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자식의 결혼을 반대할 때도 눈에 흙이 들어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자식의 결혼을 막기 위해서 죽기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치고 과장된 비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이 그렇게 함부로 들먹일 말은 아니지 않은가요?

‘죽어도 용서 못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죽으면 우리는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어도 용서를 못하고, 그가 죽어도 용서를 못합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겠지만 언어는 의외의 세상을 보여줍니다. 죽으면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답은 죽기 전에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용서일 겁니다.

용서를 하지 않으면 괴로운 것은 자신입니다. 용서가 상대를 위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용서는 실제로 나를 위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는 용서를 안 했는데, 그는 아무 문제없이 즐겁게 잘 삽니다. 더 약 오르는 일이지요. 어떤 영화에서 나는 용서를 안 했는데, 그가 신에게 용서 받았다고 하는 장면에서 더 큰 분노를 사게 되는 장면도 있습니다. 물론 신이 용서해 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겠죠. 용서는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용서의 핵심은 같은 마음에 있습니다. 다른 말로 동정이라고도 합니다. 동정은 같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용서의 서(恕) 자도 한자를 나누어 보면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이 들어있습니다. 상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용서의 기본은 ‘그가 왜 그랬을까?’에서 출발합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 용서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마 이런 경우는 가벼운 잘못에 해당하는 용서일 겁니다. 끔찍한 잘못에 이런 용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런 상처를 안긴 사람을 우리는 원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보다는 원수를 갚는다는 말에 익숙합니다. 원수를 갚으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원수는 원수를 낳기도 하는 거겠죠.

원수에 대한 용서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기도 합니다. 기독교가 놀라움을 준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원수를 용서하라 정도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용서는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나 사랑이라니요? 불가능한 요구가 아닌가요? 예수님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원수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정답입니다. 우리는 답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풀이가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답은 답입니다.

죽어도 용서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더 가슴에 담습니다. 죽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말,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종교는 용서를 말합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사랑을 묻습니다. 그러고는 원수에 대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해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제 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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