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 2, 3세로 젊어져 환골탈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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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사회 2, 3세로 젊어져 환골탈태 나선다”
  • 강성봉
  • 승인 2005.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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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독자 끌어안기’ 저마다 지면혁신 모색

   
‘동포사회의 구성원이 2세, 3세 중심으로 바뀌면서 신문 독자층의 수요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일본의 동포신문사들이 고민하는 공통적 과제이다.
민단과 총련이라는 재일동포 양대 조직의 기관지인 민단신문과 조선신보도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민단신문의 배철은 편집국장은 “독자중심의 신문으로 가기 위해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단 건물내에 역사자료실을 개설하고 민단신문 우리말 판을 발행하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한 부분이다.

또한 조선신보의 한 관계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관심을 가지는 기획기사를 많이 게재하려 한다”며 지면 혁신에 주력하고 있음을 비쳤다.
독립언론을 표명하고 있는 통일일보의 박두진 고문은 “특정조직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언론이어서 동포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신문”이라고 하며 독자와 밀착된 편집의 중요성을 강조 했다.

시사정보지 아리랑도 최근 새로운 경영자를 맞이해 환골탈태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4월 아리랑을 인수한 송윤진 사장은 “아리랑을 통해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이 민족혼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신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동포들이 모국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아 왔기 때문이다.

어떤 신문들 나오고 있나


   ■ 민단신문
지난달부터 한글판도 발간

민단신문은 요즈음 의욕에 불타고 있다. 민단의 기관지로서 민단을 고국의 동포들에게 잘 알리기 위해서 창간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1일 우리말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민단신문은 1946년 3월10일자로 조선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민단의 전신인 ‘재일조선 건국촉진 청년동맹’의 기관지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이후 ‘신조선신문’ ‘민단신문’ ‘민주신문’’한국신문’이라는 이름을 거쳐 민단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중앙위원회의 기관지 충실화 결의를 계기로 1996년 5월1일부터 다시 ‘민단신문’이라는 이름을 회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8면 순간으로 약 10만부를 발행하고 있다. 주요 독자층은 민단의 회원들과 한국 국적의 동포들이다. 

   ■ 조선신보
총련 기관지 주3회 발행

총련의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 중에서 가장 자주 발간되는 신문이다.
조선신보는 해방직후인 45년 10월 10일 ‘민중신문’이란 이름으로 창간되었다. 이후 46년 9월부터 ‘해방신문’이란 이름으로 3일에 한번씩 49년 5월부터는 격일간으로 발행되다가 61년 1월에 제호를 ‘조선신보’로 바꾼 후 같은 해 9월 9일부터는 일간으로 발행되었다. 96년 4월부터는 다시 격일간으로 주 3회 발행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신보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동포언론이 일본어로 발행되는 데 반해 줄곧 우리말로 신문을 발행해 왔다는 것이다. 현재는 4면은 우리말, 4면은 일본말로 8면을 발행하고 있다. 발행부수는 약 20,000부이다.

   ■ 통일일보
독립언론으로 신뢰 자부

통일일보는 한 때 일간으로 발행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1959년 1월 도쿄에서 이영근, 윈심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신문’이란 제호의 순간 신문으로 창간되었다. 61년 3월부터는 ‘통일조선신문’으로 이름이 바뀌어 주간으로 발행되었다.
73년 9월부터는 ‘통일일보’라는 이름으로 일간으로 발행되다 98년 5월부터 다시 주간으로 발행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일일보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창립자중 한사람인 이영근이다. 진보당사건으로 사형당한 조봉암의 비서출신으로 5.16 이후 사형당한 ‘민족일보’의 발행인 조용수에게 총련 자금을 대주었다고 지목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 동양경제일보
동포사회 유일한 경제지

재일동포사회의 유일한 경제신문이다.
동양경제일보는 1946년 4월 한일양국의 교류확대와 재일한국인의 생활 문화 향상을 목적으로 고베에서 창간됐다.
1952년에 본사를 오사카로 이전했다가 59년 4월에는 나고야로, 같은 해 6월에는 도쿄로 이전했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전인 60년 9월 부산에 부산총국을 개설했고, 같은 해 11월 서울에 지사를 개설했다. 현재는 주간으로 매주 금요일 8~32면을 일본어로 발행하고 있다.
편집방침은 일본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는 경제정보나 생활정보, 모국의 동향 등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 조선통신
북 중앙통신의 해외 창구

조선통신은 동포에 의해 운영되는 전세계 유일의 통신사이다.
총련이 운영하는 통신사이기 때문에 조선통신은 총련이 일본내에서 북한정부를 대변하는 특수한 입장과 맞물려 북한의 유일한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의 해외창구 역할을 위임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통신을 통해서 북한의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통신은 북한 관련 정보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신사이다.
조선통신은 2003년부터 북의 조선중앙통신과 위성통신 회선을 이용한 송수신체계를 꾸리고 조선중앙통신이 발신하는 우리말, 영문, 스페인어 보도와 전송사진을 수신하여 이를 한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에 제공하고 있다.

   ■ 시사정보지 ‘아리랑’
특집 기획기사로 특성화

창간 14년의 대표적인 시사정보지 ‘아리랑’은 그 동안 격조 높은 보도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여러 특집기획기사로 동포사회에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왔다.
최근 반환이 된 북관대첩비를 처음 발굴하여 특종 보도한 것을 비롯해 ‘일본 속의 한민족사 대탐방’, 신채호 선생이 창간한’신대한’ 창간호 공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등에 대한 기획기사’ 등 많은 특종과 심층 기획기사는 아리랑을 다른 정보지와 확실하게 구분 짓게 해주는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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