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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독립운동가 최창식 김원경 부부 사진앨범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⑰
이현아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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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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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함은 인생의 상정이라. 그러나 참된 인생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의에 죽고 자기 몸을 희생하기를 초개시한 진망장사제공(순국 독립운동가들)의 영혼을 우리는 다만 부끄러운 정성으로 추도할 것 뿐이라”

1925년 4월 7일 상하이에서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임시정부 주최로 열린 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합동 추도식에서 최창식 선생이 낭독한 추도사다. 이날의 추도사는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그해 독립신문 5월 5일자는 전한다.

   
▲ 1919년 10월 11일 촬영된 상해 임시정부의 기념 사진. 앞줄 왼쪽 세 번째가 최창식이며, 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김원경이다. 앞줄 중앙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앉아 있으며, 김원경 여사 뒤에 백범 김구 선생이 서 있다.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운정(云丁) 최창식(崔昌植, 1892~1957) 선생은 국권이 상실된 1910년부터 일제에 체포된 1930년까지 국내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해나갔던 인물이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일제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비밀결사들이 조직되었는데 이러한 단체들은 해외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주력했다. 최창식도 1911년 경성에서 김좌진이 주도한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금에 관여했다. 이러한 무장투쟁운동과 함께 1912년부터는 오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반일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애국계몽도 함께 추진해 나갔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현순 등과 함께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국무원비서장, 의정원의장, 국무원내무장 등을 역임할 만큼 임정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1년 6월부터는 고려공산청년단 상해회의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사회주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했다. 무엇보다도 1920년대 후반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분열된 독립운동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같은 시기 상해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바로 훗날 그와 결혼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원경(金元慶, 1898~1981) 선생이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김원경은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동년 4월에 최숙자, 김희옥 등과 함께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애국부인회의 특사로 상해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동년 9월에 혈성단과 통합하여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이화숙을 회장에 추대하고 김원경은 부회장이 되었다.

1920년 11월에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이 조직되자 그녀는 최창식과 같이 서구 의원에 뽑혀 교민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2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는 권애라와 같이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각국 대표에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김원경은 함께 활동하였던 최창식과 결혼하여 임정의 뒷바라지를 계속하였다.

   
▲ 상해에서의 최창식, 김원경 부부 가족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하지만 1930년 4월 최창식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20년에 걸친 독립운동 활동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33년 출옥했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각기병이 생겨 거의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아내 김원경이 1941년부터 상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부부는 해방 이후에도 1957년 최창식이 사망할 때까지 상해에서 머물렀으며 이후 마카오, 홍콩 등을 거쳐 1960년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1981년 김원경도 별세했고, 부부는 1986년 8월 27일 서울 국립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최창식 부부의 딸인 최영방 여사는 미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가족앨범 8권을 2006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앨범에는 최창식 부부의 상해임시정부 시절 사진 등 총 231장의 사진이 담겨있다. 특히 상해 임시정부시절 앨범에는 안창호, 김구, 이동휘, 현순, 이화숙 선생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진들이 여러 점 포함되어 있어 임시정부 초기 주요 인물들의 모습과 활동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최창식, 김원경 부부와 초기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의 사진들은 올해 8월 한국이민사박물관 상설전시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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