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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황무지에서 지켜낸 민족 혼-‘고려극장과 문학가 한진’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⑯
김동근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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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6  12: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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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동 지방에서는 1920년대부터 크고 작은 예술단이 자생하기 시작하였다. 1932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두고 지역을 순회하는 이동극장이 탄생하였는데, 이 극장이 우리민족 최초의 해외극장이자 현재 고려극장의 모태이다.

이후 1937년 강제이주를 통해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나뉘어 이주되었고, 우즈베키스탄의 고려극장이 해체되면서 현재는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만 남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은 1963년 러시아 국립극장의 지위를 얻고, 1968년에는 알마티로 이전하여 ‘국립조선음악희극극장’으로 개명하였다. 같은 해 가무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1993년에는 민속악단 ‘사물놀이’를 창단하는 등 고려극장은 한국고전에 기반을 두거나 역사적 인물을 형상화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고려가요를 모국어로 공연하며 고려인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친 삶을 달래주는 한줄기 빛으로 기능해왔다.

이 고려극장의 전성기를 연 인물 중 하나가 한진(본명 한대용)이다. 한진은 1931년 평양에서 극작가인 아버지 한태천과 어머니 박성수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과 모스크바영화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57년 북한에서 이루어진 대대적인 숙청의 여파로 한진을 포함한 모스크바영화대학생 8명 등 총 11명이 망명을 요청하였고 1958년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시나리오 작가와 레닌기치 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던 한진은 1965년 당시 조선극장 문예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평생을 극작가로 살았다. 대표작인 「산부처」를 비롯하여 다수의 희곡작품과 소설 「찌르러기」, 「그 고장 이름은?」 등을 남긴 그는 돌아갈 수 없는 조국과 가족과의 이별 등을 미학적 작품으로 승화시켜 고려인 문학 2세대를 선도하였다. 또한 모스크바 소인극장에 그의 작품이 연이어 상연되는 등 소비에트 문단의 최고수준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려인 최초의 극작가가 되었다.

지속적인 창작활동과 번역활동을 하던 한진은 1993년 위암판정을 받은 와중에도 틈틈이 작품활동을 놓지 않다가 「서울손님」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고려극장의 별로 남게 되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고려극장 및 문학가 한진 관련 자료 100여점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 연극 ‘37년-뜨란지트’ 포스터. 이 포스터는 화가 문 빅토르가 그렸다. 이 연극의 제목은 1937년 스탈린 정부가 연해주의 17만명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강제이주 시킬 때의 비밀지령 명칭에서 따왔다.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고려극장 관련 자료로는 정 블라지미르가 쓰고 한진이 번역하여 1988년 공연한 연극 ‘37년-뜨란지트’ 포스터와 한진의 원고로 1991년 공연한 ‘나무를 흔들지마라’의 무대사진, 고려극장 배우 사진, 리플렛 등이 있다.

문학가 한진 관련 자료로는 모국어를 잃어버린 후세들과 모국어로만 말하는 1세대 간의 의사소통 부재를 다룬 단편소설 ‘그 고장 이름은?’의 러시아어 번역 원고, 우리의 고전설화 토끼전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정서와 상황에 맞게 새로 개작한 ‘토끼의 모험’ 육필원고와 그가 쓴 소설작품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한진과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주고받은 편지와 한진의 다양한 사진과 당원증 등의 개인자료들도 기증받아 소장 중이다.

   
▲ ‘그 고장 이름은?’ 러시아 번역원고. 현대 고려인의 세태를 꼬집은 이 소설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이러한 고려극장과 한진에 대한 자료는 올해 하반기 한국이민사박물관 상설전시 개편과 함께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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