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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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6.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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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부부 사이는 촌수가 없다. 그래서 부부를 무촌(無寸)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가깝다는 의미도 되고, 아무런 친족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도 있는데, 참으로 씁쓸한 표현이다. 가장 가깝지만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관계가 부부다. 우리말에도 부부에 관한 속담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내와 남편에 관한 속담도 많다. 그중에는 부부싸움과 관련된 속담이 있어서 흥미롭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이 부부싸움도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싸움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도 한다. 싸움의 시작은 간단할 수 있으나 화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화해의 기술도 어쩌면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온갖 심리학의 이론이 다 동원되어도 쉽지 않다. 아무리 달래려 하고, 화를 풀어주려 해도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생각나는 속담이 바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이다.

칼로 물을 벤다는 말은 금방 다시 붙는다는 말을 비유한 말이다. 잘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칼로는 물을 벨 수 없다는 말이고, 갈라질 수 없다. 부부는 싸워도 금방 화해한다는 뜻이고,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속담인 것이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한 속담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속담이 늘 걸렸다. 왜냐하면 부부싸움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며칠간 찬바람이 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끝내 갈라서는 경우도 있다. 

나는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은 희망사항이지 실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왜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말이라는 게 자주 듣고 자꾸 말하다가 보면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자꾸 말하고, 자주 듣다보면 그렇게 믿게 된다. 실제로는 부부싸움이 칼로 두부나 도토리묵을 자르는 것과 같을 수도 있지만 ‘물 베기’라고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게 된다. 부부싸움은 아무리 심한 경우라도 금방 서로 붙게 되고, 상처가 아물게 될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부싸움은 실제로 많은 상처를 남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행동과 말로 평생 기억이 되고, 흉터로 자국이 남기도 한다. 서로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은 깊숙이 한으로 남는다. 서로의 가족을 욕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배신감을 만든다. 절대로 서로의 부모를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서로를 무시하는 말도 깊은 상처가 된다. ‘당신이 뭘 알아!’라든지 ‘그럴 줄 알았다.’라든지 하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예전에 결혼식장에 가면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사랑하라.’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 말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과도 통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를 생각한다는 말이고, 서로를 배려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가 되려면 깊은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상처가 나면 아프고, 아픈 자리는 흉이 진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부부 관계가 여기저기에서 끝이 나고 있다. 젊은이들의 이혼뿐만 아니라 황혼의 이혼도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저마다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결코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부부가 싸우더라도 깊은 상처를 만들지 말기 바란다. 진정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