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어려워서 배우고, 배워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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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어려워서 배우고, 배워서 기쁘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5.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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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세상을 살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게 참 많다. 전 헌 선생님 책 <다 좋은 세상>을 읽다가 어렵다는 말은 배우겠다는 말이라는 부분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보통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포기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 만다.(수학 문제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배우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일의 답을 가르쳐 주어도 이해가 안 된다. 분명히 답을 알겠는데 과정이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하다. 사실은 답답한 정도가 아니고, 마음이 아프고 미칠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들추어 보는 문제마다 어렵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안 든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가 내 삶에 관한 문제고, 사람과 사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떠오르는가? 어떤 문제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가? 어떤 문제가 나를 미치도록 만들고, 나를 슬프게 하는가? 답이 이해가 안 되고, 풀이 방식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혹시 답이 틀린 게 아닐까 의심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늘 이와 같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해가 안 돼서 고통스러워하며 배우고 공부한다. 이렇듯 세상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정해진 답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복잡해지고,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이 정답이 금방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아로 태어난 아이도 축복을 받아야 하는가? 정답은 그렇다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고, 수많은 의심이 생긴다. 그래서 배워야 하고, 그래서 공부해야 하고, 그래서 기도하고 명상해야 한다. 치열하게 내 속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

원수마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진리인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실제로 행동으로도 옮긴다. 모든 이를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진리인데,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떨 때는 자식과 형제도 차별한다. 심지어 학생도, 환자도 차별한다. 학력, 직업, 지역, 취향에 대한 차별은 끔찍하게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외모에 의한 차별은 어떤가? 외모에 대한 비하가 도를 넘었다. 물질에 의한 차별은 어떤가? 물질이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진리에 대한 답을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 사이에는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병들고 늙어가며 죽는다. 이것은 진리고, 정해진 답이다. 그런데 우리는 병드는 것이 원망스럽고, 늙지 않으려, 또는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죽음은 늘 내 곁에 있으며,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내 태도는 늘 복잡하다. 도대체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진리는 배운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고, 자연스레 느끼는 감정의 문제이다.

때로 글도 모르는 이가 훨씬 진리를 잘 느끼며 살기도 한다. 진리 속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사람을 조건으로 차별하지 않으며, 쉽게 용서하며, 자신의 생로병사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런 게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진리를, 그 정답을 생각하는 내 감정의 자세를 깊은 명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어려워서 배우고, 배워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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