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강’의 기적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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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강’의 기적은 기적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5.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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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눈치를 챘겠지만, 제목의 한강은 서울을 흐르는 한강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많은 한국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다음엔 노벨문학상이라는 앞선 희망도 나올 정도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기적’을 느꼈다.

사실 기적이다. 이 작품의 번역가인 데버라 스미스 씨는 한국어를 배운 지 6년밖에 안 된 사람이다. 한국어를 ‘6년’ 정도 배워서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고 한국인의 섬세한 감정까지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하여도 훌륭한 번역가를 만나지 못하면 나라 밖을 나설 수 없다. 상의 공로를 데버라 스미스 씨께 돌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처지에서 생각해 볼 때 좋은 한국어 번역가를 기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학을 연구하고, 번역에 뜻을 둔 제자를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영어권이나 유럽어권에서 온 학생들 중에서 그런 학생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어 번역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어과 교수 자리가 매우 많은 것도 아니다. 특히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한국학과의 교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어 번역에 뜻을 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한류 드라마나 영화 번역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번역이 이루어질까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잘된 번역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 사람이 번역하고 원어민이 수정해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된 것을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어 번역을 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

번역은 모국어에 대한 깊이도 있어야 한다. 우리도 한국어로 된 번역서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주로 한국어 표현이 어색해서이다. 아마 그 나라 말은 잘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한국어로 문학적인 표현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한국어도 잘하면서 모국어도 잘하는 번역자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계속 쓰고 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기적’이 된다. 한국어를 깊이 공부할 수 있는 풍토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고급 한국어, 한국어 번역 등을 가르칠 수 있게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 기관에서 한국어 능력이 우수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최고급 한국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한국어 교육 기관에 번역 등을 깊게 다루는 교육 과정을 개발해야 할 필요도 있다.

또한 한국어 번역을 이야기할 때는 재외동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인의 감성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 그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바로 재외동포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권별 번역 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재외동포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자극도 될 수 있겠다.

‘한강’의 기적이 더 이상 기적이 아니고 일상화되기 바란다. 한국어를 수준 높게 번역하는 사람이 많아져야만 한국 책이 세상에 나갈 수 있다. 한국어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가는 세상을 꿈꾼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인문학 저서나 전문 서적들도 세계 속으로 번역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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