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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말로 깨닫다] 가위에 눌려서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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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8  08: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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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가위에 눌렸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은 어쩌면 물건을 자르는 가위로 알아들을 수 있다. 가위가 얼마나 크기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할까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가위’는 그 가위가 아니다. 그러면 가위는 무엇일까? 가위의 어원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찾아보아도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가위의 어원에 대한 실마리를 한가위의 어원 재구 방법에서 찾았다. ‘한가위’의 가위와 ‘가위에 눌리다’의 가위와는 의미상 전혀 관계가 없지만 형태상 유사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원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가위의 가위는 ‘가배(嘉俳)’에서 온 말이다. 보통 ‘가운데’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가배’가 ‘가위’로 변한 것이다. 가위에 눌렸다고 할 때 가위도 ‘가배, 가비’ 등의 형태를 어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배’나 ‘가비’는 어떤 의미의 말일까?  

‘가위’가 가배나 가비와 관련이 있다고 할 때 제일 먼저 연관될 수 있는 어휘는 ‘허깨비’이다. 허깨비는 ‘헛’과 ‘개비’로 나누어진다. ‘가비’가 ‘개비’로 되는 현상은 한국어에서 흔한 현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ㅣ’모음 역행동화라고 한다. 아비를 ‘애비’, 어미를 ‘에미’, 왼손잡이를 ‘왼손잽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허깨비는 ‘개비’가 헛것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에 보아도 무서운 ‘가위, 개비’가 현실에서도 나타나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한편 허깨비는 ‘헛애비’가 변한 말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 ‘가위에 눌리다’는 표현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애비’보다는 ‘개비’가 개연성이 높다. ‘헛애비’는 방언에서 ‘허재비’로 나타나는데 이는 ‘허수아비’의 의미이다. 즉, ‘가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개비’를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어휘로는 ‘도깨비’를 들 수 있다. 도깨비는 중세국어에는 ‘돗가비<석보상절>’, ‘독갑이<역어유해>’로 나타난다. 이 표현도 ‘돗’과 ‘개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도깨비의 어원도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김민수 편(1997) <우리말 어원사전>에서는 어원 미상으로 나온다. 명확한 어원을 찾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서정범 선생의 경우는 ‘돗’을 중세국어에 나타나는 ‘도섭[幻]’ 즉, 변화와 요술의 의미로 보고, ‘가비’는 ‘아비’로 본다. 변화를 부리는 사람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가위’와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 요술을 부리는 ‘기운’, ‘귀신’ 등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가위’는 꿈에서 나를 누르고, 조여 오는 ‘귀신같은 기운’이기 때문이다.

가위, 개비의 어원과 관련하여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어휘로는 ‘방아깨비, 땅개비, 갈개비(개구리의 제주 방언), 두꺼비(둗 + 개비)’ 등이 있다. 주로 이상하거나 징그러운 모양을 하고 있는 동물이다. ‘갈개비’에서 ‘갈’은 물을 의미하고, ‘두꺼비’의 ‘둗’은 땅을 의미한다. ‘두더지’는 ‘땅쥐’라는 의미다. 어원적으로 명확하게 가위와 연관되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우연한 형태의 일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나는 가위에 눌렸다. 무서운 경험이었다. 가위는 주로 ‘눌렸다’라고도 하고 ‘들렸다’라고도 하는 경우도 있다. 즉, 가위는 나를 누르는 것이기도 하고, 내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가위에 들리면 뭔지 스멀스멀한 기운이 나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뭇한 그림자가 나를 감싸기도 한다. 숨도 쉬기 어렵고 온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꿈속에서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가위가 들린 순간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다. 소리가 터지고 나서야 가위에서 벗어난다.  

깨고 보면 종종 같이 자는 사람의 다리가 배를 누르고 있는 경우도 있고, 물건이 가슴 위에 놓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가위에 눌린다는 표현을 썼을 것으로 본다. 무언가에 쫓기기도 하지만 무언가에 눌린 경험이 표현을 ‘눌리다’로 고정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가위에 눌린 경험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나는 가위에 눌리고 나서 가위는 지옥을 미리 보여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위는 육체의 삶이 아니고 꿈속의 삶이니 지옥은 죽음 이후에도 반복되는 가위 눌린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위 눌린 꿈이 생각난다.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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