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버시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버시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3.10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이 글의 제목을 보고서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했을 겁니다. ‘버시’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라져 버린 말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버시’는 ‘남편’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시버시’가 부부를 가리키는 순 우리 말인데, 그 중에 ‘가시’가 부인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가시집’은 ‘처가집’을, ‘가시아버지’는 ‘장인’, ‘가시어머니’는 ‘장모’를 의미하는 말로 ‘시집,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대비되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시’는 따로 쓰이지는 않으나 관계로 미루어 볼 때, ‘남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원적으로는 ‘벗’이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어는 변화합니다. 언어는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자말을 쓰게 된 것이나, 서양어를 쓰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을 모두 다 없애 버리고,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어휘들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외래어에도 중요한 기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자말을 사용하여야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외래어,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겸손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말에는 우리의 삶이 들어 있고,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정겹죠. 저는 좋은 우리말 어휘들이 있으면 살려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멘토(mentor)’를 우리말로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냐고 물어 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몇 달을 고민한 끝에 ‘길스승’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서 보내드렸습니다. ‘내 길을 알려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물은 이께서는 ‘길스승’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쓰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말들을 살려 쓰는 것도 좋은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단어들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학자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 국어학자나 한글 운동가들이 많은 단어를 만들어 내고 찾아냈지만 생명력이 길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언어의 생명력은 일반 대중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길스승이나 버시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아있게 되기 바랍니다. 가시버시나 가시집, 가시어머니, 가시아버지도 모두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버시’는 ‘벗’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평생 가까운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에게 적당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내에게 좋은 벗이고 싶습니다. 좋은 ‘버시’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