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시차적응(時差適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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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시차적응(時差適應)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3.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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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다른 나라에 여행을 할 때,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고 갈 때면 심한 시차를 느끼게 됩니다. 밤이 되어도 멀뚱멀뚱 눈만 깜박이고 있고, 낮에는 병든 병아리 모양으로 시름시름합니다. 눈이 퀭하기도 합니다. 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강의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시차적응에는 완전 실패자입니다. 늘 시차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차가 큰 해외에 가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시차적응이 쉬운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 시차적응이 이리 어려운데, 어떻게 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도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야기는 아니니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증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우선 시차적응이 쉬운 사람은 어린아이들입니다. 더 어릴수록 시차적응이 쉬운 듯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만에, 길어도 이틀 정도가 지나면 마치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릴수록 자연의 상태에 가까워서가 아닐까 합니다. 시간이 바뀐 곳에 가면 그 자연에 순응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차를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시차적응이 쉬운 사람들은 노인들입니다. 일전에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께서 한국에 특강을 오셨을 때 쉽게 시차적응을 하시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시차적응이 어려운데, 어떻게 금방 시차적응을 하셨냐고 여쭈었더니, 나이가 들어서 시차적응을 못하면 몸이 ‘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답을 하셨습니다. 그 말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부모님도 비교적 시차적응이 빠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인들은 오랫동안 한 곳의 생활에 익숙해서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노인의 몸은 자연스레 자연의 생태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픈 사람들도 시차적응을 비교적 잘하는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몸을 보호하려 할 것이고, 그러므로 쉽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해 가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시차적응을 못한다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몸이 병들었을 때, 자연적으로 치유 활동이 이루어지듯이 환자들은 시차에 적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차적응은 습관의 산물이고, 의지의 결과입니다. 젊은 사람들이나 의지가 강한 사람, 빨리 적응해서 무엇인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시차는 크게 다가옵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몸과 마음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차를 극복하려고 마음을 먹을수록 내 몸 속의 시계는 내가 붙잡고 있는 세계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우리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시차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순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밤이 깊으면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일 것입니다. 시차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자신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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