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나이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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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나이에 대한 생각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2.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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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나이’에 대해 질문하는 게 싫다는 이야기가 많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나이를 묻는 것이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나이를 묻는 게 금기가 되는 경우도 있고, 나이로 차별하는 것도 심각한 차별인 곳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상황과 맥락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어쩌면 나이를 묻는 것은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 그래야 존댓말을 할 것인지가 결정되니까.

  나이에 관한 언급 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아마도 공자의 말씀일 것이다. 30세는 입(立)의 나이, 40세는 불혹(不惑)의 나이,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60세는 이순(耳順)의 나이, 70세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나이라고 했다. 70세를 고희(古稀)라고도 하는데, 이는 매우 드물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하는 표현이다. 물론 지금은 매우 많으니 70세가 고희라는 표현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는다.
 
  30세 입(立)이 되면 홀로 설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오히려 20대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20대는 참으로 불안하다. 뭔가 책임을 져야할 나이 같은데 아직 모든 게 두렵다. 하지만 그 나이를 일단 30으로 미루어 두어도 될 듯하다. 세상에 홀로 서는 나이는 스무 살 청춘 때가 아니다. 아직은 더 뜨겁게 세상을 만나고 부딪쳐 보아도 된다.
 
  나이를 두고 제일 많이 인용되는 표현은 ‘불혹(不惑)’인 듯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신의 생각이 뚜렷해지는 시기라는 말이다. 하지만 40을 지나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참 어려운 나이이다. 유혹에는 번번이 넘어간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금방 귀가 솔깃해 지기도 한다. 내 주관이라고 하는 게 그저 욕심이나 고집인 경우도 많다. 나이 40에 스스로 반성하며 새겨야 할 어휘가 ‘불혹’이라고 생각한다. 돈 욕심도, 권력 욕심도, 명예 욕심도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욕심 부릴 일이 왜 이리도 많은지. 헛된 욕심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50세 지천명에 대해서도 많은 해석이 있다. 나는 지천명의 핵심은 ‘천명(天命)’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는 말은 무엇일까? 사실 내가 볼 때는 지천명이면 이순과 종심도 모두 끝난 이야기이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는데 귀가 순해지지 않을 리 없고,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문제가 될 리가 없다. 공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지 모르겠으나 나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늘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천명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단계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단계이고, 남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길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60세 이순(耳順)은 귀가 순해진다는 뜻으로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나는 ‘이순’이 이치에 통달하여 듣는 대로 척척 알아내는 사람의 의미보다는 ‘용서하는 사람’의 함의가 강하다고 이야기한 도올 선생의 의견이 맞는다고 본다. 70세에 마음대로 행동해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말은 이순의 반대편 모습이다. 남의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내 모습도 세상을 구분 짓는 일에 얽매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구분 짓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어찌 보면 불혹부터 종심까지는 모두 같은 말일 수도 있다. 즉, 불혹이면 지천명이고, 지천명이면 이순이며, 이순이면 종심이다. 불혹인데 유혹에 수도 없이 넘어가고, 지천명이라며 나의 욕심을 먼저 챙기고, 이순인데 오히려 고집이 세지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큰 일이 난다. 나도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지천명의 의미를 깊이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