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받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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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받침의 비밀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1.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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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어떤 소리인가에 따라 어휘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소리를 더 좋은 소리라고 생각할까? 음운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소리의 특성에 따라 우리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 흥미롭다. 우리가 잘 아는 것 중에 ‘거센소리, 된소리, 예삿소리’의 경우에는 어떤 소리인가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다. ‘감감하다’와 ‘깜깜하다’, ‘캄캄하다’의 경우는 세기의 강도가 다르게 다가온다.

모음의 경우는 더 규칙적이다. 밝은 소리와 어두운 소리가 있다. 이른바 모음조화가 있다. ‘찰랑’과 ‘출렁’의 느낌, ‘발발’과 ‘벌벌’의 느낌이 명확히 구별된다. 그래서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모음의 차이로만도 느낌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언어학적인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어감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한 속담이 있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언어학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받침의 경우에도 느낌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받침이 ‘ㄱ, ㄷ, ㅂ’의 소리로 나는 경우의 어휘는 왠지 지속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막힌 느낌, 끝의 느낌, 답답한 느낌이 난다. 지금 막 언급한 ‘막히다, 끝, 답답하다’의 받침을 생각해 보라. 단어를 발음만 해 봐도 느낌을 알 수 있다. 주변의 단어 중에서 ‘ㄱ, ㄷ, ㅂ’으로 발음 나는 받침의 예를 생각해 보라. 물론 모든 어휘가 예외 없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일리가 있는 접근이다.

받침이 울림소리인 경우에는 무언가가 계속 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울림소리는 발음을 했을 때 계속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ㄴ, ㄹ, ㅁ, ㅇ’소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시에서 이러한 음을 받침에 쓰면 여운을 길게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시를 찾아보면 주로 행이나 연의 끝에 울림소리 받침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받침이 아니라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음 역시 울림소리니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진달래꽃)

우리말의 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울림소리로 끝이 난다. ‘은, 는, 이, 가, 을, 를, 만, 도, 까지, 조차, 아, 야’ 등의 경우를 보라. 조사는 보통 말의 한 마디가 끝남을 나타낸다. 하지만 무언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울림소리를 써야 다음의 말을 잇기가 자연스럽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조사 부분에서 길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다음 이야기가 금방 생각나지 않을 때 조사를 길게 끌게 된다. ‘내가~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밥을~ 먹고 있는데~’와 같이 말이다.

받침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ㄱ’과 ‘ㄹ’ 발음의 받침이다. ‘막다, 꺾다, 꽉, 뚝, 탁’ 등의 느낌을 보라. ‘ㄱ’은 막혀 있고, 끝나버린 느낌이다. 더 이상 계속되지 않고 꺾인 느낌을 준다. 우리말에서 ‘죽다’가 기역 받침인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이승의 삶이 끝나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ㄹ’ 받침의 경우는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지속적인 느낌이 있다. 흘러가고, 올라가고, 굴러가고, 돌아가고 가는 세상의 느낌이 난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살다’는 리을 받침이다. 삶은 움직이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받침은 단순히 받침이 아니다. 발음을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언어를 이야기하면서 언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받침이 보여주는 세상에 눈 돌려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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