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배우다와 깨닫다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 배우다와 깨닫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2.23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박성배 선생님을 뵙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선생님은 전에 성철 스님께 자주 듣던 이야기라면서 ‘위학익일 위각손일(爲學益日, 爲覺損日)’이라는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매일 무언가를 더해야 하지만, 깨닫기 위해서는 매일 무언가를 덜어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사람이 얼마나 깨달음의 자리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엇인가 분석해 내고 싶어 하고, 무엇이든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돌아설 때마다 오늘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바로 학자라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의 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어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어디부터가 깨달음이고, 어디까지가 깨닫지 못한 것인지를 분석해낼 수 있을까요? 깨달음이란 이런 거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저마다의 경험이 다름에도 모두 같지 않으면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깨달은 내용을 정리하고 내일 깨달을 내용을 예비하는 것이 실로 가능한 일인가요?

내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늘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강박관념과 깨달음을 설명하려고 하는 지적(知的)인 오만, 그리고 깨달은 후에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실용적인 사고가 내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음이 다 보였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다 덜어낸 후에 다시 얻은 지식, 다시 돌아본 지식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벽들을 허물고 본 세상은 경계가 없어진 둘 아닌 세상일 것입니다.

저는 “덜어내는 게 저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맞는 답입니다.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덜어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