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신청 이렇게 어려워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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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신청 이렇게 어려워서야…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0.06.19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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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들, 18일 ‘국적취득동포 정책토론회’서 토로
지난 2008년 4월 대한민국 국적신청을 한 중국동포 2세 최태숙(56세) 씨.

두 외삼촌은 6․25전사자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는 최씨의 친정은 한국에 있다. 당연히 최씨 역시 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06년 83세로 별세한 최씨의 노모는 “내가 죽어도 고향땅을 한 번 더 밟아보고 고향에 뼈를 묻는 게 소원”이라고 간절한 귀향의 뜻을 밝혔다. 결국 최씨는 모친의 유언을 계기로 한국 국적을 취득키로 마음먹고 2007년 12월 5년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국적 신청 후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국적 취득의 모든 과정은 최씨에게 하나하나가 난관이었다.
국적 취득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불면증, 우울증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최씨. 그녀는 “최소한 인간적 삶을 살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며 “정말 이렇게까지 하면서 국적 취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동포에 대한 포용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일까.
최씨가 첫 번째 애로사항으로 지적한 것은 귀화시험에 따르는 고령자의 어려움이다. 어느덧 50세를 훌쩍 넘긴 최씨에게 시험은 어려움을 넘어 공포에 가깝게 다가왔다.

2009년 10월 처음 치른 1차 시험은 “안 어려워보였으나 탈락했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좀 더 준비를 갖춰 나섰던 2차 시험 역시 최씨에게 탈락의 고배를 안겼다.

“두터운 시험대비교재를 사서 두달 동안 공부하면서 애국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는 최씨는 그러나 “20문제 가운데 연습교재에서 나온 문제는 2문제 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최씨에게는 아직 3차 시험의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나 요행히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도 아직까지 국적취득의 길은 멀기만 하다.

“친정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데 또 다시 유전자 검사며 자료를 챙길 일이 까마득하다”는 최씨. 더욱이 2차 시험보다 더 어렵게 나온다는 3차 시험에 대해 최씨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보였다.

최씨는 국적신청기간 동안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호소했다.

“이 기간 동안 취업활동이 제한되잖아요.” 최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집세, 전기세 등 기초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고, 본인 역시 우울증 증세를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를 원활하게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국적신청자를 위한 한국생활대비 적응교육을 실시하고 국적신청 기간 동안 취업활동을 제한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적 취득 과정에서 오는 이 같은 난점들은 결국 지금까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던 대다수 중국동포들에게 “한국 정부가 우리의 귀화를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

국적 취득 이후에도 곤궁한 삶

중국동포 이철구 씨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중국 공민이 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강조한 중국동포 1세 이철구 씨(74세).

“한국정부가 10만명에 가까운 동포들에게 국적회복 또는 귀화허가를 내준 것에 감사드린다”면서도 “한국정부는 이들에게 국적만 허가했지 그 뒤에 있어야 할 적법한 조처가 따르지는 못했다”고 꼬집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에도 곤궁한 생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중국동포들의 딱한 처지를 호소한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현재 가리봉동, 구로동, 대림동, 안산 원곡동 등 동포 밀집거주지역에 거주하는 국적보유자 중 90%가 저층 혹은 반지하방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여러 집이 공동으로 주거하는 이들의 생활환경은 수시로 침수 및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형편이다.

길게는 수십년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던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이질감도 문제로 제기됐다.

지난 2009년 귀화한 동포 2세 정옥봉 씨는 “정작 한국에 와보니 동포들이 거의 최하급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며 “뿌리를 찾아 왔건만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배척 당하고 의붓 아이처럼 찬밥 신세가 돼 버린 우리들의 신세가 가엾기만 했다”고 귀화 직후의 심경을 토로했다.

중국에서는 북경상업대학을 졸업해 중국은행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삼성 협력업체인 휴대폰케이스 공장을 경영하기도 했던 정씨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는 정씨는 “뭘 하려고 해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 국민연금이니, 보험이니, 세금이니 하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씨와 같이 중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상위계층의 생활을 했던 동포일수록 국적 취득 후 후회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적을 취득했거나, 국적 취득을 앞두고 있는 중국동포들 대부분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관문은 너무나 좁고 험난하기만 하다.

이에 18일 ‘한국 국적 취득 동포 한국생활 조기 적응 정착을 돕기 위한 정책토론회’를 마련한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은 “여러 동포들이 따뜻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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