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시각장애인 돕는 하상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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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시각장애인 돕는 하상복지회
  • 이현아 기자
  • 승인 2010.05.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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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 비협조에 좌절 겪기도...

지난 30일 조선족 시각장애인 최초, 유일의 복지기관을 자임하는 하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관계자들을 만났다.

역시 시각장애인들로 이루어진 복지관의 담당자들은 취재에 나선 경험이 없다고 쑥스러워 하면서도 “우리는 시작을 한 책임이 있다”고 조선족시각장애인 후원사업에 대한 결의를 드러냈다.

하상복지회가 조선족시각장애인에 대한 교육 및 직업재활지원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7년 전의 일이다.

사업이 계획된 것은 그보다 5년 앞선 1888년으로 한-중간 수교가 이뤄지기 전이다.

생각보다 유서가 깊은 역사에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설명하는 담당자들은 “대북선교사업을 구상하다가 시작하게 됐다”며 손사래를 친다. 애초에 조선족 시각장애인을 돕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각장애인에 대한 개념이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낙후됐덤 점을 감안하면 하상복지회의 시작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양지수 하상장애인복지관 중국파트 시설장은 당시 연변 조선족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우리의 60년대 모습과 빗대 설명한다.

“집밖으로 나오지를 못했어요. 식구들이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주지 않으면 굶는 거죠. 통계수치도 없어 우리가 일일이 그들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막상 찾아가 보면 벨트가 없어 노끈으로 바지춤을 동여맨 이들이 어두컴컴한 방에 고립돼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복지회가 처음 연변 조선족시각장애인 사업을 시작할 무렵 현지 조선족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시작된 조선족시각장애인 재활사업의 발판이 된 것이 당시 설립된 연변조선족 시각장애인재활센터.

기숙생활을 하도록 마련된 이 시설에서는 3년 과정으로 일상생활훈련, 침구학, 안마학 등의 의학교육이 진행됐다. 특히 의학관련 수업에는 연변대학교 교수가 직접 강의에 나섰다.

교육은커녕 인간적인 삶조차도 보장받지 못했던 조선족시각장애인들에게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던 것.

김호식 하상장애인복지관 관장은 “중국 기관의 복지시설을 증축해 센터를 개관했습니다. 첫해에 처녀교사로 부임한 손인숙 선생이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어요. 현지에서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솔직히 죄송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큽니다”라고 센터를 소개했다.

김 관장이 언급한 손인숙 씨의 헌신적인 교육과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센터는 현지 조선족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복지회는 현재까지 약 7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의사증과 중급안마사자격증 취득을 통해 병원에 취업하거나 안마소개업소를 개업한 이들도 적지 않다.

양지수 중국파트 시설장은 “약초를 공부한다고 자기가 직접 약초를 씹었다가 열병을 앓은 친구가 있었어요.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합니다”라고 조선족 시각장애인 학우들의 칭찬을 쏟아낸다.

그는 이어 “센터 과정을 마치고도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계속해 의사가 된 친구들도 있어요. 어엿한 안마소를 개업해 가족을 이룬 학생들이 우리가 방문할 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벅차죠”라고 소감을 전한다.

하상복지회가 현지에서 조선족 시각장애인들의 재활사업을 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다.

해외 단체에 대해 배타적인 중국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나 복지회를 단지 한국행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일부 조선족의 시도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회의를 낳기도 했다고.

김호식 관장은 “17년 했으면 오래 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중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바랐죠. 특히 손 선생님의 후임자를 찾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어요. 우리가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상복지회는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선구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김 관장은 “우리는 시작을 한 책임이 있어요”라며 “어떻게 보면 그들은 독립군의 후예이고 우리 민족인데 그 나라 정부가 돕지 못하면 우리가 하는 것이 당연하죠”라고 강조한다.

복지회와 함께 조선족 시각장애인 재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방향숙 선교회 부회장은 “현지에 가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봐요. 그들을 생각하면 사업을 그만 둘 수가 없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상복지회는 지난 30일 연변의 센터운영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바자회를 개최해 성황리에 마쳤다.

국내에서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할 때면 “국내에도 도울 이들이 많은데 조선족시각장애인을 돕는 게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해 상처를 받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이날 바자회에 참석한 이들은 하나같이 “조선족이라면 우리들의 동포”라며 복지회의 사업을 지지해 이들의 활동에 힘을 실었다.

바자회에 참석한 한 주부는 “그들이 동포이건 아니건, 장애인이건 아니건 행복할 자격이 있다”며 “나 또한 덕분에 좋은 물건을 사게 됐으니 일석이조”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복지회는 오는 7월 센터의 졸업식을 맞아 연변을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해 재원마련의 어려움으로 중단됐던 조선족시각장애인 한국 초청사업도 하루 빨리 재개할 방침이라고.

지난 해 사회적기업 국제 심포지움의 옵서버 자격으로 내한한 이춘자 연변조선족자치주장애인협회 리춘자 대표는 현재 200만 이상의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구 중 16만 8,900명이 장애를 겪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상복지회의 향후 활동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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