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의 한글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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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의 한글 전도사'
  • 이현아 기자
  • 승인 2007.10.1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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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맞아 국무총리표창 수상한 고려인 3세 한글교사 이 나탈리아씨

 

"한국학, 배우고 싶어도 그 기회가 하늘의 별 따기" 현지 열기 전해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 보급에 이바지 한 재외동포 세 사람에게 표창이 수여됐다. 그리고 러시아의 고려인 3세 이 나탈리아씨도 이들 수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95년에 처음 한국어를 접한 후 '지금까지도 배우는 중'이라는 이씨의 한국어는 느리지만, 정중하며, 바르다. 이 나탈리아씨가 러시아에서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다.

교감으로 재직 중인 페테르부르크 제 151학교의 러시아 학생들에게 제2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과,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에서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고려인 2․3세를 대상으로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일이다. 둘은 같은 듯 다르다.

이씨는 지난 99년부터 한국어를 러시아 제2외국어로 채택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펼쳐왔다. 말할 것도 없이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한 일이다.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교육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청원을 넣고, 한편으로는 151학교 내에서 꾸준히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꼭 필요한 일인가... 회의가 들 때도 많았지만 학생들이 끝까지 따라와 주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씨는 “그들에게는 동양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있었거니와, 한국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국어가 가능성 있는 언어로 인식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봄 결국 한국어가 러시아 공식 제2외국어로 채택됐으며, 지난 99년 처음으로 한국어 정규 수업을 도입했던 제 151학교는 현재 한국어를 필수 이수과목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에게 반드시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던 이유를 묻자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더러 있었지만, 한국이나 한국어를 보급하는 바람직한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러시아인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소수민족의 언어로가 아니라 유력한 제2외국어로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한다.

그는 매일 오후 고려인 2․3세를 대상으로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운영하다보니, 러시아 학생들도 늘어 지금은 고려인 반 현지인 반이 됐지만, 제 151학교의 한글 수업과는 그 취지가 사뭇 다르다.

“알다시피 동포 2세에 접어들면 벌써 제 나라 말을 잊기 시작한다. 더구나 구소련의 격동의 역사와 함께 하며, 모국과의 연결고리가 약했던 고려인은 더 빨리 러시아 문화에 동화됐다”고 설명한 뒤 “외국어를 배우듯 한국어를 배우는 동포들에게 말만 가르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그 차이를 짧게 대답한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센터에 대해 그는 "한 마디로 배우는 사람은 돈을 안 내고, 가르치는 사람은 돈을 안 받는 시스템이다"고 말한다. "한글수업은 대개 한국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일 적어도 2~3개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이씨는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이들이 한국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대에 한국학과가 있지만 러시아 학제상 4년에 8명 정도의 학생을 뽑는다. 배우고 싶어도, 그 기회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뉴욕의 경우, 한국어를 대학 입시로 치르도록 하기까지는 10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더라”며 “러시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일 뿐, 한국 정부의 지원, 각종 재정적 후원, 러시아 당국의 협조까지 있어야 하는 문제다”고 말한다.

“배울 곳이 없어, 주민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경찰이 달려오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151학교가 배려해 주어 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운을 뗀 이 씨는 “아파트 복도에서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으니 학교는 거의 천국이지만 학생들은 2시간 정도를 들여 학교에 와야 한다”라며 이번에 상을 받은 것은 정말 기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생각하면 착잡하기도 하다.

다행히 물심양면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한국청소년문화센터는 후원금 모금을 위해 오는 20일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후원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다부진 목소리로 공연 소식을 전하는 이씨의 목소리가 소감을 전할 때보다 더 들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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