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할아버지는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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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할아버지는 바보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12.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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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오늘의 이야기는 조금은 심각합니다. 할아버지를 바보, 천치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런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를 어리석다고 나무라는 경우도 거의 없겠죠. 그건 할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할머니에게 천치라고 이야기하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바보나 천치와 같은 말은 심각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깜빡깜빡합니다. 금방 들어도 잊어버리고,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으레 그러려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각해지면 병이 됩니다. 치매에 걸리게 되는 겁니다. 치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지능 · 의지 · 기억 따위 정신적인 능력이 상실된 상태.’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병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보입니다. 치매 환자나 치매에 걸리다가 연관어로 나옵니다.  

나이를 먹으며 가장 두려운 병은 치매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두렵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특히 내가 한 일, 저지른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일반적인 건망증하고는 다르기에 치료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치매의 치료가 멀지 않았다는 뉴스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그 뉴스가 나오면 눈이 갑니다.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혹시라도 나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비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여러 가지 치매에 대한 예방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말로 저렇게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 치매는 사실상 차별어이고, 심하게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이지요.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용한 저는 좀 괴로웠습니다. 치매라는 말은 한자어입니다. ‘치매(癡呆)’의 한자를 찾아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치매의 한자 뜻은 무엇일까요? 혹시 놀라고 싶으시다면 이쯤에서 직접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런 말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했다니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치매의 치(癡)는 어리석다는 뜻이고 심하게는 미치광이라는 뜻입니다. 천치(天癡), 백치(白癡)라고 할 때도 이 글자를 씁니다. 매(呆) 역시 어리석다는 뜻이고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정말 심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치매라는 말은 병에 걸린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차별어이고, 차별을 넘어서는 모욕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을 피해야 하는 말이죠. 일본어에서는 치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꾸었습니다. 인지에 문제가 생긴 병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적당한 표현으로 바꾸어 부르기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 찾아온 한숨이 나오는 병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천치, 백치로 부르는 것은 화가 나는 일입니다. 
 
한편 한자 치를 살펴보면서 잠깐 생각에 잠깁니다. 치는 의심이 많아지는 병이라는 생각이 글자를 보면서 들었습니다. 글자모양이 병과 의심이 합쳐져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무조건 의심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결국에는 자신을 믿지 못하니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치를 간단히 쓸 때는 알 ‘지(知)’ 자 들어간 치(痴)를 씁니다.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은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자신은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만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병입니다. 두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타의 병과 마찬가지로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겁니다. 때로는 아이로 되돌아가 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됩니다. 저는 언어가 차별이나 모욕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차별과 모욕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말에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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