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 얄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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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 얄 ’ 이야기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8.03.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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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어휘의 발음을 해 보면 어떤 경우는 발음 자체가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어휘 중에 하나가 바로 ‘얄’입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청산별곡이라는 고려가요는 내용도 좋지만 후렴구가 매력적입니다. 바로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라는 후렴 때문인데 ‘얄’이라는 음이 다섯 번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참 재미있죠. 악기의 소리라든지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든지 하는 논의가 있지만 아무래도 묘미는 얄의 반복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 단어에서 ‘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의미도 재미있게 바뀝니다. 묘한 재미를 줍니다. 얄이 접두사로 쓰여서 원래 말을 살짝 비트는 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어휘로 <얄밉다>가 있습니다. 이 어휘는 ‘얄미럽다’ 등과 같이 방언에서 다양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얄밉다는 <밉다>와는 달리 깜찍스러우면서 미운 것을 의미합니다. ‘얄미워 죽겠어!’라는 말도 하지만 어쩐지 완전히 미운 감정만은 아닌 느낌입니다. 밉기는 한데 왠지 깜찍함이 있으니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는 느낌이 납니다. 주로는 ‘말이나 행동이 약빠르고 밉다.’는 의미로 쓰이게 됩니다. 물론 얄미운 것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니 얄밉게 행동해서는 안 되겠죠.

<얄궂다>라는 어휘도 있습니다. 이 말은 ‘야릇하고 짓궂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얄궂다’도 <궂다>와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궂다’는 말은 ‘궂은 날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안 좋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얄궂다’에는 야릇하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야릇한 기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나쁘다는 느낌만은 아닙니다. <야릇하다>도 어원적으로는 ‘얄’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야릇하다’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이 묘하고 이상하다.’는 뜻입니다. 이상하기는 하지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묘한 어휘죠.

비슷한 어휘로는 <얄망궂다>가 있습니다. 이는 ‘성질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까다로워 얄미운 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의미가 얄밉다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얄망스럽다>와도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성질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까다로워 얄미운 듯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역시 얄밉다와 연결이 되죠. <얄상스럽다>와도 관련이 있는데 ‘몹시 야살을 떠는 듯한 데가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발음이 비슷한 <얄쌍스럽다>라는 어휘는 ‘예쁘장스럽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이지만 완전히 부정적이지 않은 특징을 보이는 어휘들입니다. <얄나다>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는 야살스럽게 신바람이 나다는 의미입니다. 야살스럽기는 하지만 신바람이 난다는 부정과 긍정의 느낌을 전해 줍니다.

다른 어휘들을 좀 더 살펴볼까요? ‘얄개’는 장난꾸러기의 느낌입니다. 야살스러운 짓을 하는 아이를 일컫는데 뭔가 신나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느낌의 아이입니다. 예전에 얄개 시리즈의 영화가 유행이었는데, 그 영화를 본 사람이면 얄개의 느낌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어원이 같은지는 좀 더 공부해야 하지만 <얇다>에 해당하는 어휘도 얄의 느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방언을 포함해서 ‘얄상하다, 얄쌍하다, 얄팍하다, 얍삭하다’와 같은 어휘가 있습니다. <얄짤없다>와 같은 어휘도 연구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시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을 생각해 보죠. 청산별곡을 무슨 자연에 돌아가서 살고 싶은 사람의 심정을 노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분노, 원망, 한숨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밤을 지내기 힘들어 합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일어나서는 계속 눈물이 납니다. 참 얄궂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가 단순히 노래의 운율을 위한 게 아니라면, 세상에 어긋나 비틀어져 있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