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8.03.05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곳과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은 그대로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간과 공간이 정해진 노래는 기억의 선율이 되어 과거를 불러 옵니다. 언제나 그 때가 돌아오면, 항상 그곳에 가게 되면 추억이 그리움이 됩니다.

장소가 정해진 곳에는 노래비도 많습니다. 옛날 노래인 <목포의 눈물>이나 <울고 넘는 박달재>, <연안부두> 등과 최근에는 <여수 밤바다>, <양화대교>까지 장소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추억의 장소가 가사 속에 더 많이 담기면 좋겠습니다.

시간에 관한 노래 중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가사는 잘 담아 들려줍니다. 계절에 관한 노래도 많지만 아무래도 특정한 날이 아니어서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봄에는 봄의 노래가 좋고, 여름에는 여름 노래가 좋습니다.

최근의 노래 중에는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가 계절에 맞물려 귓가에 들리게 됩니다. 곧 벚꽃이 피고, 또 이 노래가 들리겠네요. 날짜와 관련된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되는 노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들어가는 <잊혀 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헤어짐이라는 감정이 쓸쓸한 가을 날 시월의 마지막 밤을 떠올리게 합니다. 왠지 10월 31일 밤이면 이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일을 노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토요일에 관한 노래가 많았습니다. 토요일까지 일을 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토요일 오후나 토요일 밤은 해방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도 많았죠.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를 들으면 젊은이들은 절로 즐거운 몸짓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주 5일제로 바뀌고 나서는 토요일에 대한 노래는 좀 시들해졌습니다. ‘불금’이라는 말이 있듯이 금요일 밤이 훨씬 중요한 시간이 된 겁니다. 앞으로 금요일에 관한 추억을 살리는 노래가 더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니 요일마다 특별한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요일이 들어간 노래 중에서 시간이 흘러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수요일은 안 되고, 비 오는 수요일이어야 하니까 1년에 몇 번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 삶에 비 오는 수요일이 나타날 거고, 그 때마다 문득 빨간 장미가 떠오를 겁니다. 즐거운 그리움입니다. 실제로 장미를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한 송이를 살까, 한 다발을 살까 망설인다면 노래가 추억이 된 사람입니다.

<새벽기차>, <풍선>,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등을 부른 이두헌 선생은 요즘 소극장 운동과 마음 음악회에 열심입니다. 화려한 공연보다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작은 공연을 열고 있습니다. 통기타 한 대만 들고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은 노래에 담긴 사연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치유합니다. 노래는 그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알면 감동이 더 오는 것 같습니다. 노래와 친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서로의 소박한 진심을 만나는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소극장에서 울리는 기타소리와 노랫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나이를 먹어도 그리움이 될 겁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소극장이나 작은 음악회에서 추억을 만들기를 권합니다.

얼마 전에 제자들과 함께 이두헌 선생의 대학로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대학로에서는 예전처럼 소극장에서 가수들의 공연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그리운 뮤지션을 만나는 일은 행복한 일입니다. 공연을 보는 순간도, 돌아와서 기억을 되살리는 순간도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저에게 추억이 되고 마음에 토닥임이 될 겁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