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랍의 봄과 청년들의 무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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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랍의 봄과 청년들의 무신론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4.03.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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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아랍의 봄과 무신론자

알자지라 넷(aljazeera.net)에서 이브라힘 알사이드는 ‘아랍의 봄, 청년들 사이에 왜 무신론이 퍼져갔는가?’라는 제목 앞에 ‘(이슬람) 믿음에 대한 쿠데타’라고 쓰고 있다.

“2011년 혁명 이전에 컴퓨터가 나의 세계였고 2011년까지 내가 사는 알렉산드리아에 무신론자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무신론자로서 혼자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백여명의 무신론자들이 내 주변에 산다” (https://www.aljazeera.net/midan/reality/community/2019/1/26/الانقلاب-على-الإيمان-لماذا-ينتشر ).

위 글은 아랍의 봄 이후 무신론을 택한 어느 아랍 무슬림의 고백이다. 실제로 아랍 혁명 이후 아랍국가에서 수많은 아랍 청년들이 무신론자가 됐다. 아랍 세계에서 무신론 현상의 이정표가 됐다고도 했다. 2011년 이후 아랍 세계에서 무신론자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들의 동기와 결과를 검토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런 맥락에서 무신론과 혁명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정치와 혁명과 무신론

아랍에서 무신론은 ‘일하드(ilhād)’라고 하는데 그 뜻은 ‘알라를 예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알라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말을 포함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랍의 혁명 이후 무신론자들이 많아졌고 아랍 국가들은 이들의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2013년 BBC가 이집트의 알싸바흐 신문에서 인용한 무신론자들의 숫자는 300만명이었다. 

이집트의 알야움 알사비으 신문에는 “무신론의 확산에서 이집트가 아랍 국가들 중 선두에 서있다”고 했다(2018년 1월 8일자). 이집트 사회는 한쪽에는 극단주의와 테러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무신론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18년 이집트에는 무신론자가 500만을 넘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20-25세 연령대에 있었으며 이집트 의회는 무신론이 범죄라는 법안을 상정했다. 실제로 국회의원 오마르 하므루쉬는 4개 조항으로 구성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1항은 무신론의 정의, 2항은 무신론자에 대한 처벌과 무신론을 범죄시하고 3항은 무신론자가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면 처벌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https://www.youm7.com/story/2018/1/8/مصر-الأولى-فى-الإلحاد-ورقم-13-عالميا-فى-الإرهاب-«إزاى/3591001 ).

권위에 대한 도전과 무신론

아랍 혁명 기간에 아랍 청년들은 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제도나 사상 그리고 심지어 종교까지 의혹을 제기했다. 아랍 혁명 동안 일부 아랍 정권들이 전복됐고 권위에 대한 불신과 종교적 텍스트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아랍 청년들 사이에서 무신론이 증가하게 된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첫째 요인은 모든 권위에 반항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적 권위와 가부장적 권위에 반항하고 심지어 신앙적 권위에 대한 순종을 거부하는 것(tamarrud)이었다. 두번째는 이집트의 경우, 1월 25일 혁명이 실패하자 이집트 청년들이 정체성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면서 의미를 찾지 못했고 사회 전반에 좌절감이 증폭했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서 사회적 권위, 종교적 권위, 가부장적 권위가 추락하게 됐다. 한 마디로 권위(sultah)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런데 정치적 권위가 대중의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분야에서 통제력을 갖는 기회를 가지면서 왜곡된 종교적 담론이 생겨나기도 했다. 

공공영역에서 정치적인 활동이 확대되면서 정치와 권위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들이 종교와 법적 텍스트에 반영됐다. 그 결과 정치적 권위에 대한 반항이 종교적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졌다. 

압둘 까하르는 상당 수 청년들의 무신론은 정치적 권위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고자 했고 신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아랍의 봄을 몸소 경험했던 아랍 청년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너지고 야망이 사라진 후에 심리적으로 무너져내리는 실망감을 가졌다. 결국 아랍 청년들의 장밋빛 꿈은 사라졌고 상실감과 허무감 때문에 일부는 무신론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