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랍무슬림의 전통과 '현시대로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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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랍무슬림의 전통과 '현시대로의 이동'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승인 2024.03.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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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전통과 현시대

아랍어 ‘하다사(hadaatha)’는 시간적인 개념에서는 옛것과 대조돼 새것을 가리키고 과학적인 개념에서는 창의성과 발달을 가리킨다. 또 ‘하다사’는 서구문학에서 옛것에 저항하고 ‘타즈디드(renewal)’를 요구하는 여러 가지 사상적 운동을 가리킨다. 아랍시에서 ‘타즈디드’는 아랍의 정형시(까씨다)를 목적과 유형과 사상과 문체에서 타끌리드(전통)의 범위를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이다. 

아랍에서는 오늘날 ‘하다사’에 대한 여러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 개념들 속에는 변화, 지속된 운동, 현시대, 전통적인 패턴과 반대되는 개념, 발달, 사회적인 변환이란 개념들이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아랍어 ‘하다사’는 영어로 ‘modernity’라고 번역하지만, 서구에서 사용했던 modernity 개념과 다르게 사용할 때가 있다. 

금세기에 무슬림 세계 도처에서는 전통(타끌리드: 다른 사람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따르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 유산을 검토하고 현시대의 현실에 대한 답변(타즈디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무슬림들이 있다. 그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논란이 된 ‘현시대(hadaatha)로의 이동’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상가 타우피끄 알사이프는 무슬림들이 진보를 방해하는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대정신과 그 요구 사항에 적응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해보자고 하면서 이런 일을 성취하기 위해 무슬림이 행해야 할일이 뭐냐고 물었다. 실제로 많은 사우디아라비아 무슬림들이  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현시대로의 이동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다. 예를 들어, 현시대로의 이동은 이슬람 종교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무슬림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은 사우디아라비아 무슬림들이 전통에 대한 집착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현시대로의 이동은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열망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 결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사회적 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전통과 현시대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

타우피끄 알사이프는 원칙적으로 현대 생활 방식이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결점이나 결함이 없다는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증거는 없다고 했다. 두가지 생활 모두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한 것이다. 물론 한국인이 볼때 사우디 무슬림의 전통(타끌리드)은 구습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타우피끄 알사이프가 주장하는 것은 ‘현시대성’의 미덕은 전통적인 것보다 더 넓고 깊으며, ‘현시대성’의 결함은 치료하기 쉽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슬림들이 현대적인 삶 또는 전통적인 삶,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슬림 각자가 자신의 생활과 자신 앞에 놓인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본 다음, 자신의 관심이나 열망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충분한 정당성을 각자 무슬림이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맹이 많은 예멘은 물론, 일부 아랍국가에서 문맹들은 이맘이나 가장이나 부족의 우두머리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간다. 특히 무슬림 가정의 딸들과 아내들은 아버지와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한다. 

타우피끄 알사이프는 전통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은 물질적 관점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인간 자신과 세상, 즉 인간과 세상의 사물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리 즉 새로운 우주관을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그는 인간은 원칙적으로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고 했다. ‘개인’은 자신의 신앙, 문화, 생활 방식, 가치관 및 미래의 열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랍 무슬림들이 자신의 신앙과 문화, 생활 방식, 가치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랍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을 버리고 다른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 심지어 가치관도 어려서부터 꾸란에서 언급된 가치관을 주입시킨다. 이슬람에서는 순전히 종교적인 가치나 이성적인 가치가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부패한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준이라고 한다. 

무슬림들의 이성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

둘째, 그는 무슬림에게 종교는 정신적 평온을 제공하고 인간과 알라, 그리고 알라가 인간을 위해 창조한 우주 질서와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무슬림에게 과학은 이 질서를 탐구하고 활용해 무슬림의 삶을 발전시키고 물질적, 도덕적 번영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근대와 현대에 와서, 아랍무슬림들은 과학을 무슬림의 삶을 발전시키는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

셋째, 무슬림에게 시간은 현대성의 개념과 사상의 과학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 그는 역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진보(taqaddum)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오는 내용은 이전 내용보다 더 정확하고 완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랍 무슬림은 지금의 이슬람 세계는 과거 무함마드의 시대보다 더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무함마드의 동료와 그 동료들의 추종자와 그 추종자들의 추종자들을 살라프(선조)라고 하고 이들의 모범을 따르는 무슬림을 살라피라고 하는데, 오늘날 아랍국가는 물론 이슬람 국가 어디를 가나 살라피들을 만날 수 있다. 살라피는 텍스트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반기독교적이다.

무슬림들의 정신구조와 세계관

타우피끄 알사이프는 위 세 가지 원리가 전통 시대와 현대 시대를 구분짓는 선(line)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대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통적인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또 종교적인 사람이나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무슬림은 현대 도시에 살 수도 있고 깊은 시골에 살 수도 있는데, 그가 옛시대에 속하든 현시대와 상호 교류하든 간에 그의 정신적 구조와 세계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무슬림을 만나면 그가 전통을 답습하는지 아니면 현대적 필요에 적응하는지를 그들의 생활과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들을 한 가지로 정형화시키는 것은 무슬림의 실상과 부합되지 않는다. 

무슬림들 중에는 극단주의자와 세속주의자도 있고, 종교적인 무슬림과 경제적인 무슬림도 있고, 수피 무슬림과 민속 무슬림도 있고, 전투적인 무슬림과 문화적인 무슬림도 있고, 명목상의 무슬림과 무신론자도 있고, 이슬람을 잘 모르는 무슬림, 이슬람을 법과 교리로만 인식하는 무슬림, 또는 이슬람을 이데올로기로 보는 무슬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