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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괴롭다는 말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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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8  10: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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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괴롭다는 말은 맛이 쓰다는 뜻입니다. 괴롭다는 말의 어원은 ‘고롭다’입니다. 여기에서 ‘고’가 ‘쓸 고(苦)’입니다. 씁쓸한 느낌이 괴로움일 수 있겠네요. 육체적으로는 아플 때 느끼는 것은 통(痛)이고, 정신적으로 아플 때는 고(苦)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고통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괴로운 일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괴로운 일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더 괴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때문에 더 괴로워지지 않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반복적으로 내 마음과 머릿속을 부정적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부정에 매몰(埋沒)되어 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괴로움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괴로움은 때로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괴롭다는 말을 자주 쓰신 분은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의 박성배 선생님이셨습니다. ‘괴로워요, 괴로웠습니다’라는 말을 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에는 괴로움과 함께 희열도 느껴졌습니다. 괴로움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괴로운 일을 이겨냈을 때는 기쁨이 되기 때문에 두 표정이 한꺼번에 느껴졌던 것입니다. 괴로운 일이 없었다면 기쁨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괴롭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은 내가 자라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일종의 성장통(成長痛)이지요. 나의 어떤 부분이 괴로운지를 살펴보면 내 자라는 부분을 알 수도 있습니다.

박성배 선생님이 제일 괴롭다고 말씀하신 것은 깨달음을 알지 못하면서 깨달음을 강의하실 때의 경험이셨습니다. 종교라고 하는 분야의 강의는 아마 모두 이러할 것입니다. 자신이 정확하게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가르치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불교학자인 선생님에게 불교의 수많은 신비한 체험은 환희인 동시에 괴로움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의 보현행원품 강의에 관한 책을 보면 이러한 괴로움이 절절히 묘사되어 나옵니다. 어쩌면 불교의 체험이나 기독교의 체험을 하였다고 하여도 과연 그것이 제대로인 체험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은 가짜 체험을 진짜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종교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착각입니다. 깨달았다는 착각 말입니다. 저는 종교의 체험을 보면서 부러움과 괴로움을 느낍니다.

몸이 아파도 괴롭지만 마음이 아파도 정말 괴롭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치료도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많이 아픕니다. 사랑이 식어서 이별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이별도 있고, 어찌할 수 없는 이별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영원한 헤어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다고도 하고, 땅이 꺼진다고도 하지만 아픔을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 됩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픈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그때는 모르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큰 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간호하다가 본인이 더 큰 병을 앓거나 오히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종종은 일하기 위해서 사는 듯해서 힘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삶과 일은 뗄 수 없고 그래서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괴로울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괴롭습니다. 학생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참 괴롭습니다.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졸고 있는 학생의 모습은 저를 괴롭게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선생의 입장에서는 학생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강의가 만족스럽지 않은 주된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의 준비가 부실했기 때문이죠. 자주 하는 강의일수록 준비가 부실한 느낌이 있습니다. 일상화되어 있는 습관이 나를 나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면 치유도 비교적 간단합니다. 강의의 경우라면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죠. 학생의 경우라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겁니다.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하는 이때 이번 학기 괴로웠던 일이 계속 떠올라서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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