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기전으로 돌입한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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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기전으로 돌입한 미중 무역전쟁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8.12.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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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중국의 ‘전략적 양보’와 소강상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미중 무역 갈등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직 자세히 밝혀진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한 발 양보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마지못한 양보가 있었을 것이다. 목숨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완벽한 굴복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물 밑에서 수많은 꽌시(關係)를 동원해 후퇴를 숨기고 체면은 살리는 ‘전략적 양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양보를 받아야 하는 미국의 입장도 그렇게 일방적 우세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고수(高手)끼리의 싸움은 피차 내상(內傷)이 큰 법이다. 미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미 덩치가 커버린 중국이 결코 가벼운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럼프가 큰소리를 치는 모습에서 미국의 허약함을 동시에 볼 수도 있다. 소위 왕년에 잘 나갔던 사람들이 속이 허(虛)하면 자주 큰소리를 치는 법이다. 진정한 고수는 상대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실제로 저물어 가는 미국의 현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이 가고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했다. 미국은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움을 거는 도박을 했고 중국은 너무 성급하게 덤볐다. 시스템의 미국이 자부심과 체면으로 무장한 중국에 그물을 던졌고 중국이 덜컥 그 그물 안으로 들어와 버린 형국이 된 셈이다. 중국인의 오랜 전략이 바로 ‘그물 전략’이다. 상대를 서서히 그물 안으로 몰아넣고 어느 순간에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그물 전략의 요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중국이 자랑하는 전략과 전술을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사용했다. 중국은 당황했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중국의 아픔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그만큼 연구를 많이 했고 중국은 스스로 너무 방심했다. 삼국지의 사마의(司馬懿)는 텅 빈 성 마루에 앉아 거문고를 뜯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보고 고심 끝에 말 머리를 돌렸다. 의심은 갔지만 천하의 제갈량(諸葛亮)을 허투루 볼 수만은 없었다. 비록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지언정 당장의 허세보다는 신중함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제갈량은 쓸쓸히 중원 땅에서 저 세상 사람이 돼 퇴각했지만 사마의는 마침내 천하를 제패한다. 신중함과 치밀함 그리고 장기전에 누구보다 강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장기전으로 돌입한 미중 무역전쟁

그래서 소강상태로 접어든 미중의 무역 전쟁은 이제부터 장기전(長期戰)이 될 것이다. 조조의 100만 대군도 상대의 지략과 뛰어난 전술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은 지금부터 다시 입술을 깨무는 듯하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늘 있는 법이다. 오보 전진을 위해서 일보 후퇴하는 전략도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체면이 상하고 자존심이 구겨진 패배는 대(代)를 이어 복수를 해야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가 그걸 말해준다. 어쩌면 미국이 계속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완벽하게 승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금세기 이후에 다시 있을까? 미국 스스로 “장담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만약 이번 기회가 자칫 마지막 기회가 된다면 미국의 입장은 당연하다. 시간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좀 더 압박해야 한다. 미중의 무역 갈등은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한가하게 이 둘의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많다. 어느 쪽이 승리해도 우리에게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운명적인 시장, 장기적인 관점으로 전략 다듬을 때

사드문제로 우리의 대 중국 시선은 싸늘하게 식었다. 이 또한 중국의 패착이지만, 우리에게는 중국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동안 어설픈 지식과 전략으로 중국 시장에 들어갔음을 반성할 수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정세와 시장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지 사드 갈등의 아픔으로 중국 시장을 포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의 시장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우리보고 거저먹으라는 곳은 아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전으로 들어간 지금, 중국 시장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운명적인 시장이고 숙명적인 곳이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15억 대륙의 시장이 우리 앞에서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희망과 좌절을 주면서 지나갔다.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장이기에 우리의 전략은 더 더욱 냉정하고 치밀해야 한다. 거점을 만들고 사전에 포석도 깔아야 한다. 제대로 된 ‘꽌시’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과거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이 아니듯이 중국도 옛날의 중국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중국인이 더 이상 우리를 대접하지 않아도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체면을 앞세우다 미국에게 당하는 작금의 중국의 모습에서 우리도 뭔가는 느껴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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