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신문
편집 : 2018.10.17 수 14:25
오피니언
[우리말로 깨닫다] 우울(憂鬱)을 떠나보내다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20  17:04: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세상에서 가장 힘든 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저는 우울증이라고 대답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심하게 우울증을 앓아본 것도 아니면서 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만 우울증은 희망이 없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나을 희망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없다면, 앞으로 좋은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근심이 머릿속에 빽빽이 담겨있다면, 다른 생각이 내 속에 들어올 틈마저 막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러한 감정을 우리는 <우울하다>라고 합니다. 우울의 한자는 근심할 우(憂)에 빽빽할 울(鬱)입니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요. 사실 울(鬱)이라는 단어에는 답답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유가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쓰는 어휘가 우리말에서는 <짜증>입니다. 짜증 역시 자신을 쥐어짜서 빈 공간을 만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가 없죠.

우울이나 짜증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 혼자 버려져 있다는 생각, 모든 것을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스스로를 가두게 됩니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울은 보는 사람마저도 힘들게 합니다. 우울이 함께하는 삶을 방해합니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우울한데 다른 사람은 기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가족이라면 이상한 가족이겠죠.

영어에서는 블루(blue)를 우울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말에서는 푸른색이 희망을 나타내는데 영어에서는 푸른색이 우울함도 나타낸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우리말의 푸른색도 다양한 장면에서 쓰입니다. 보통은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퍼렇게 멍이 들었다는 말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겠죠. 영어의 블루는 주로 한밤중의 어스름한 푸름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말에서는 <어슴푸레>라고 합니다. 어두워서 희미한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푸레>는 푸르다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정확한 어원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밤의 푸름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는 어렵겠지요. 혹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보통은 하루의 시간이 다음 날의 시간으로 바뀌는 때에는 쓸쓸한 감정이 들곤 합니다. 무언가 뚜렷하지 않은 광경과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지요. 블루는 그런 느낌입니다. 블루스라는 음악은 그런 감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울은 나쁜 감정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예라고 대답할 겁니다. 저는 오히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평범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루를 살펴보면 해가 뜨는 새벽도 있고, 맑은 아침도 있고, 쨍쨍한 낮도 있고, 노을빛 가득한 저녁도 있습니다. 물론 어두운 밤과 어슴푸레한 시간도 있겠지요. 그래서 우울한 감정은 흐름에 따라 지나가게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명상을 가르치는 분께 나를 괴롭히는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흘려보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없애려 하는 마음조차 집착이 됩니다.

늘 우울할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계속 밤만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 감정 속에 우울을 빼곡히 채워 놓습니다. 자꾸 마음이나 기분이 가라앉게 됩니다. 이럴 때 쓰는 한자어가 <침울>입니다. 침울(沈鬱)은 우울한 마음으로 점점 가라앉는 상태를 표현합니다. 정말 힘든 감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흘러 보낸다는 말도 함께 떠올립니다. 언젠가 지나갈 겁니다. 없애려 하지 말고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조현용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
미주민주참여포럼, 루 코레아 연방하원의원...
2
민주평통 오스트리아, 한명숙 전 총리 초...
3
뉴욕서 ‘달콤매콤 한국’을 맛보세요
4
제1차 한-멕시코 경제협력위원회 서울서 ...
5
농림축산식품부, ‘아세안+3 농림장관회의...
6
문재인 대통령, 10월 13일부터 유럽 ...
7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반도 평화기원 음악회,...
8
[신간] ‘남북 경제 금융 상식 용어 해...
9
한지로 만드는 무궁화, 홍콩서 한지공예 ...
10
한국국제교류재단, 가나·니카라과 등 6개...
오피니언
[역사산책] 부여족 신공왕후의 일본 정벌
일본이 ‘만세일계(萬世一系)’ 혈통의 첫 왕으로 떠받드는 유명한 진무(神武)왕에 관한
[법률칼럼]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 (2)
남성인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여 복수국적을 유지(복수국적
[우리말로 깨닫다] 지나쳐서 보지 못한 것
지나치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나가는 것이고, 하나는 넘치는 것
한인회ㆍ단체 소식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03173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711호(내수동, 대우빌딩)  (주)재외동포신문사 The overseas Korean Newspaper Co.,Ltd. | Tel 02-739-5910 | Fax 02-739-5914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아00129 | 등록일자: 2005.11.11 | 발행인: 이형모 | 편집인: 이명순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명순 
Copyright 2011 재외동포신문. The Korean Dongpo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