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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김춘추의 나당연합과 사대주의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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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30  13: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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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김춘추의 아버지와 사위의 원수 ‘백제’

김춘추는 신라 내성사신 김용춘의 아들이다. 진평왕의 첫째 딸 덕만공주는 절에 출가했고, 둘째 딸의 남편은 백제의 무왕이니, 셋째 딸의 남편인 김용춘이 둘째 사위지만 신라 정치의 실세인 내성사신이 됐다.

김용춘은 26대 진평왕(579~632)의 둘째사위로 큰 사위 백제 무왕과 신라 왕권을 다투는 동서전쟁을 시작한 사람이다. 두 사위의 다툼이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진평왕은 절에 출가한 첫째 딸 덕만공주를 불러들여 왕위를 물려주니 이 사람이 선덕여왕이다. 김용춘이 죽자 김춘추가 그 지위를 상속하여 신라의 정권을 전단하며 백제 무왕과 혈전을 벌였다.

무왕이 죽은 뒤에 백제 왕위를 계승한 의자왕이 성충의 계책을 써서 신라 대야주를 쳐서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 부처를 죽이고 그 관내 40여 성을 빼앗자, 김춘추가 얼마나 통분해 했던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사나이가 어찌 앙갚음을 못 하리.”

고구려와 동맹 추진

그러나 장고 끝에 김춘추가 내린 결론은 ‘신라는 나라가 작고 백성들이 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에게 앙갚음을 하겠는가. 오직 외국의 원조를 빌릴 뿐’이라는 것이었다.

김춘추는 고구려로 찾아갔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 군사 1백만을 격파한 조선의 유일한 강국이었고,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유일한 거인이었으므로, 연개소문만 사귀면 백제에 앙갚음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신라‧고구려 양국 동맹의 이(利)로써 연개소문을 설득했다.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이 거의 다 성취되려는 판에, 백제의 사신 상좌평 부여성충이 이를 알고 연개소문에게 투서편지를 보내 ‘백제와 동맹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설득하니 연개소문이 드디어 김춘추를 잡아 옥에 가두고는 욱리하 일대의 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투옥된 김춘추의 탈출 작전

김춘추가 이에 비밀수행원으로 하여금 고구려왕이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에게 선물을 주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니, 연개소문이 권력을 잡고 있는 판에 왕의 총신이라 한들 무슨 힘을 쓰겠는가. 그러나 선도해가 선물을 탐내어 이를 받고 말하기를 “내가 공을 살릴 수는 없으나, 공이 살아갈 방도는 가르쳐 주겠다.”하고는 고구려 당시에 유행하던 「귀토담」이란 책자를 주었다.

귀토담은 지금 전해오는 ‘별주부전’이란 이야기의 원본이다. 병든 용왕에게 토끼의 간이 명약이라 하여 토끼를 꼬여 용왕나라로 데려간 거북이(별주부)에게, 간을 빼내어 금강산 숲 속에 숨겨놨다고 속여 용궁에서 도망쳐 나온 토끼 이야기다.

김춘추가 선도해의 뜻을 알고는 이에 거짓으로 고구려왕에게 글을 올려서 “욱리하 일대의 땅을 고구려에 바치겠습니다.”고 하니, 연개소문이 이에 김춘추와 맹약을 맺고 석방시켜 귀국하도록 허락했다. 김춘추가 국경에 이르러 고구려 사자를 돌아보며, “땅은 무슨 땅이냐. 어제의 맹약은 죽음을 벗어나려는 거짓말이었다.”고 하고는 토끼같이 뛰어 돌아왔다.

나‧당 연합과 사대주의 시작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양국 사이에서 고립된 한 개의 약소국이 되어 부득이 새 동맹을 바다 서쪽에 있는 당에게서 구하게 되었다.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서 당 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사정을 진술하고, 힘이 닿는 한 모든 비사(공손한 말)와 후례(많은 예물)를 다하여 원병을 청하였다.

아들 법민, 인문 등을 당에 남겨두어 인질로 바치고, 신라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스스로 기록해 오던 제왕 연호를 버리고 당의 연호를 쓰고, 또 당 태종이 편찬한 <진서>와 깎아내기도 하고 덧보태기도 한 <사기>, <한서>, <삼국지> 등 - 그 중에서도 조선을 모욕하고 멸시한 말이 많은 기록들을 가져다가 그대로 본국에 전하여 퍼뜨림으로써 사대주의의 병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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