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백제 의자왕과 성충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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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백제 의자왕과 성충의 문답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7.08.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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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성충과 김춘추의 외교전 - 연개소문을 설득하라

 

▲ 이형모 발행인

고구려는 왜 연개소문을 따르는가?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해 대야주 40여 성을 차지한 지 얼마 후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고구려의 전권을 잡았다. 의자왕이 상좌평 부여성충에게 물었다. “연개소문이 신하로서 그 임금을 죽였는데도 고구려 전국이 다 복종하고 그의 죄를 묻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충이 대답했다. “고구려가 서국(중국)과 전쟁한 지 수백 년 만에 영양대왕 때에는 세 차례나 백만의 수나라 군사들을 물리쳐서 국위가 크게 떨쳐 고구려의 군사들과 인민들이 서국과 맞붙어 싸워보려는 대 기염이 하늘을 찌르려 하는 판입니다. 그런데 고건무(영류왕)가 도리어 군사들과 인민들을 압박하고 서국과 화친함으로써 그들의 노여움을 촉발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이 고구려 누대의 장상, 명가로서 왕을 반대하고 정당론(征唐論)을 주장하여 국민들의 인기를 얻어 그를 계기로 건무를 죽였기 때문에 고구려 전국이 연개소문의 죄를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공로를 노래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와 당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의자왕이 물었다. “고구려와 당이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기겠는가?” 성충이 대답했다. “당이 비록 토지가 고구려보다 넓고 인민도 고구려보다 많으나, 연개소문의 전략은 이세민(당 태종)이 따라올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승리는 반드시 고구려에 있을 것입니다.”

왕이 물었다. “이세민은 네 나라의 군웅을 토벌하여 황제가 됐고, 연개소문은 아무런 전쟁 경험이 없는데 어찌 연개소문의 전략이 이세민보다 낫다고 하느냐? ”

성충이 대답했다. “신이 왕년에 고구려에 가서 아무 직위도 없는 소년 연개소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함께 담론해보니 의기가 호방하고 병법에 통달하여 지략이 비상했습니다. 이제 서부 누살 직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대신 수백 명을 죽이고, 수나라 수군 십만 명을 몰살한 영웅 영류왕을 쳐서 이기고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으니, 이는 이세민이 따라올 수 없는 일입니다.”

고구려가 당을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고구려가 당을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언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연개소문이 10년 이전에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다면 오늘날 당을 멸망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겨우 오늘에 집권에 성공했는데 이세민은 벌써 20년 전에 중국을 통일했고, 치국의 수완도 정밀하며 인민을 사랑하여 민심이 따르므로, 연개소문이 비록 싸움에 이기더라도 민심이 여전히 당(唐)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 첫 번째 어려움입니다.”

“두 번째는 연개소문이 비록 고구려를 통일했으나 내부적으로 왕실과 호족의 잔당들이 끊임없이 연개소문의 뜻을 엿보다가, 만일 당을 멸망시키기 전에 연개소문이 죽고 그 후계자가 미약하면 반란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양국의 흥망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부여 성충이 말하는 백제의 생존전략

왕이 말했다. “우리나라가 이제 비록 신라의 대야주는 차지하였으나 아직 그 근본을 뒤엎지 못하였으니, 저들의 보복할 마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가 당을 멸하거나 아니면 당이 고구려를 멸하거나 한 후에는 반드시 남침해올 것이니, 그때 가서 우리나라가 북으로는 고구려나 당의 침입을 받고 동으로는 신라의 반격을 입게 된다면, 장차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성충이 대답했다. “현재의 형세로 보건대, 고구려가 당을 치지 않으면 당이 고구려를 쳐서 서로 대립할 것이니, 이 점은 연개소문도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당과 싸우자면 반드시 남방의 백제와 신라와는 미리 화친을 해야 뒤를 돌아보는 염려가 없을 것이니, 이 점도 연개소문은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백제와 신라는 피차간에 적대감이 깊어서 고구려가 이들 중 어느 한 나라와 화친을 맺으면 다른 한 나라와는 적국이 될 것이란 점도 연개소문은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은 장차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와 화친을 맺어, 고구려가 당과 전쟁할 때에 남방의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하느라 고구려의 뒤를 엿보지 못하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제 백제를 위하여 계책을 생각하건대, 빨리 고구려와 화친을 맺어 백제는 신라를, 고구려는 당을 맡아 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라는 백제의 적수가 못 되니, 틈을 타서 이로운 쪽을 따라 나간다면, 유리한 것은 모두 고구려보다 백제에 있습니다.”

이에 의자왕이 그의 말을 옳게 여기고 성충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냈다.

부여성충과 김춘추의 외교전쟁 - 연개소문 설득

부여성충이 고구려에 가서 이해관계로써 연개소문을 설득하여 동맹조약을 거의 다 체결하게 되었는데, 연개소문이 갑자기 성충을 멀리하면서 여러 달 동안 만나주지도 않았다. 성충이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여러 모로 탐지해 보았더니, 신라의 사신 김춘추가 와서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동맹 성립을 훼방 놓으면서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을 체결하려고 운동하고 있었다. 

성충이 이에 연개소문에게 글을 써 보내어 말했다.
“명공(明公)께서 당과 싸우지 않겠다면 모르지만, 만일 당과 싸우려 한다면 백제와 화친을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국(중국)이 고구려를 칠 때에 매번 군량 운반의 불편함으로 인하여 패하였으니, 수가 바로 그 거울입니다. 이제 만일 백제가 당과 연합하면, 당은 육로인 요동으로부터 고구려를 칠 뿐만 아니라 배로 군사들을 운송하여 백제로 들어와서 백제의 쌀을 먹으면서 남으로부터 고구려를 치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고구려는 남북 양면으로 적을 받게 되는 것이니, 그 위험이 어떠하겠습니까.”

고구려는 백제와 동맹

“신라는 동해안에 있으므로 당의 군사와 군량 운반의 편리함이 백제만 못할 뿐만 아니라, 신라가 일찍이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치다가 마침내 백제를 배신하고 죽령 밖 고현 안쪽의 백제 땅 10개 군을 점령하였던 사실은 명공께서도 아시는 바이니, 신라가 금일에 고구려와 동맹을 맺을지라도 내일에 가서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의 토지를 습격하여 취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연개소문이 이 글을 읽어 보고는 김춘추를 가두고 죽령, 욱하 일대의 신라 영토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부여성충은 드디어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당나라는 신라와 동맹

그 후 김춘추는 연개소문에게 영토를 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신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급히 당나라 태종을 찾아가 '나당 연합'을 제안한다. 이미 고구려 침공 계획을 추진하던 당 태종은 흔쾌히 신라와의 동맹을 받아들인다. 부여성충의 예상대로 이제 당나라와 신라의 동맹군과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군의  전쟁이 임박했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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