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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순종황제의 유언 조칙8월의 특별한 기억 - ‘한국병합은 성립하지 않았다’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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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7  13: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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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다. 1904년 2월 ‘의정서’ 이후 1905년 11월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과 1910년 병합조약 등 5개 조약 모두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비준동의가 없는 ‘국제법상 무효인 조약’이다. 그래서 일제 35년은 국제법상 ‘무력으로 강점’한 것이다.

일본정부 기밀보고서 '한국병합시말'

1910년 6월 일본정부는 한국병합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현지에서는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총지휘했다. 그가 병합조약 후에 일본 총리에게 보고한 ‘한국병합시말’이라는 기밀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정부는 마지막 조약만은 정식조약으로서 모든 요건을 갖추려 했고, 또 한국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당부한 사실이 적혀 있다.

병합조약은 이전의 4개 조약과는 달리 정식조약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을 갖춘 것으로 되어 있다. 전권위원에 대한 위임장, 협정문안, 그리고 비준서에 해당하는 문서 등이다.

전권위임장은 일본측 준비위원회에서 다 갖추어 통감에게 보내고, 통감이 이완용에게 건네주면서 황제의 서명날인을 받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8월 22일 오전에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통감부에서 일방적으로 선별한 한국측 대신 4,5명이 황제 앞에서 ‘여기에 서명날인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식으로 요청하는 자리였다.

전권위임장에는 서명

순종황제는 이 문서를 앞에 놓고 두 시간 정도 묵묵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사진자료를 보면 전권위임장에 날인된 도장이 국새(國璽)로, 대한제국의 국새인데 ‘대한국새(大韓國璽)’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자 ‘척(坧)’을 서명했다.

위임장에 황제가 서명하자 이완용은 이것을 들고 데라우치 통감의 관저로 갔다. 데라우치 통감이 미리 준비한 조약문에는 조약명칭을 따로 두지 않고, 전문을 길게 써서 그 속에 병합조약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끝 장을 보면 제8조 다음에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가 서명날인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병합 조칙으로 비준을 대신하기

서명날인을 마친 뒤에 데라우치 통감이 내놓은 각서는 두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병합조약 및 양국 황제폐하의 조칙을 쌍방이 약속(訂合)하여 동시에 공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조약체결 절차상으로 비준을 할 시간이 없고, ‘병합을 알리는 조칙으로 비준을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조칙문은 준비위원회에 의해 미리 준비되었고, 일주일 뒤인 29일을 발표일로 정해 실행했다.

한국황제가 서명하지 않은 병합조약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대한제국의 고종, 순종 두 황제가 발부했던 조칙들을 모아놓은 ‘조칙철’이라는 책자가 있다. 철해진 조칙 중에 1909년 11월 4일자 조칙에는 행정결재용 ‘칙명지보(勅命之寶)’라는 어새가 찍혀 있고, 그 위에 황제의 이름자 서명이 있다. 그런데 1910년 8월 29일 병합조칙에는 도장만 찍히고 위에 반드시 있어야 할 황제의 서명이 없다.

황제의 이름자 서명은 1907년 7월의 협약으로 통감부가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감독권을 강제로 획득하면서, 일본정부의 서명제도와 동일한 것을 요구해 시작된 것이다.

황제의 서명이 없더라도 ‘칙명지보’의 어새는 어떻게 찍혔을까? 이 어새는 1907년 협약이후 통감부가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킬 때 빼앗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도장이 찍힌 것은 순종황제의 의사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황제의 서명부재 상태는 ‘한국병합조약에 대해서 한국황제가 승인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순종황제의 유언 조칙

병합조약과 관련하여 순종황제는 죽기 직전에 유언을 남겼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끈 대한인국민회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하는 ‘신한민보’라는 신문에 게재됐다.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의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유언조칙’은 신한민보 7월 28일자로 보도되었다.

순종황제가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조정구(趙鼎九)라는 사람에게 ‘병합조약을 자신이 승인하지 않았고, 양국의 조칙 즉 나라를 내주는 조칙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다음은 조정구 씨가 순종황제의 구술을 받아 쓴 것이다.

< 유언 조칙 전문 >

한 목숨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하여 조칙하노니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 일본을 가리킴)이
역신의 무리(이완용 등을 뜻함)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 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박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

나,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한 지가 지금에 17년이라
종사에 죄인이 되고 2천만 생민(生民)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이 꺼지지 않는 한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깊은 곳에 갇힌 몸이 되어 말할 자유가 없이
금일에까지 이르렀으니
지금 한 병이 위중하니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죽으면
짐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지금 나 경에게 위탁하노니
경은 이 조칙을 중외에 선포하여
병합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게 하면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認准)과 양국(讓國)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리라.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한 가운데 여러분들을 도우리라.

                                (조정구에게 조칙을 나리우심)

‘한국병합은 성립하지 않았다.’

창덕궁 깊은 곳에 갇힌 몸이 되어 말할 기회가 없었던 황제가 죽음을 앞두고 강제병합의 승인을 강요받은 당사자로서 남긴 유언이다. 그는 ‘병합 인준과 양국의 조칙에 내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으며, 이 내용은 병합을 알리는 조칙의 문서 상태와 일치한다. 황제는 전권위임장에는 할 수 없이 서명날인 했지만, 비준서에 해당하는 병합 공포 조칙에는 서명날인을 거부했던 것이다.

한일 5개 조약을 점검해보면, 의정서(1904년2월), 제1차 일한협약(1904년), 제2차 일한협약(1905년), 한일협약(1907년) 등 4개 조약은 모두 한일 양국의 비준서가 없다. 한국병합조약(1910년)도 일본 측의 비준서가 있을 뿐 한국의 비준서가 없다. 한국병합의 역사는 일본의 불법과 폭력의 소산이며, 따라서 그것은 법적으로 무효일뿐더러 절차와 형식을 완전히 무시한 점에서 성립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이태진 교수의 '동경대생에게 들려준 한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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