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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진흥왕 순수비-북한산, 함흥 초방원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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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4  18: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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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격동과 반전 - 신라의 굴기

기원 551년 돌궐족이 고구려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해오자, 양원왕은 군사를 나누어 돌궐족을 격퇴했다. 고구려 주력군이 북쪽으로 출병한 시기에, 백제의 달솔 부여달기가 백제의 정예병 1만으로 평양을 공격하여 점령했고 양원왕은 급히 도망해 장안성으로 천도했다.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기로 한 신라는 참전하지 않고 관망하다가, 신라의 진흥왕은 은밀히 백제의 뒤를 습격하여 백제가 새로 얻은 땅들을 탈취하기로 작정했다. 거칠부를 보내어 백제 땅 10개 군을 탈취하고는 고구려와 강화하고, 어제의 동맹국이던 백제를 적국으로 삼아 그 동북지역을 공격하고 지금의 이천광주한양 등지를 취하여 새로운 영토로 삼았다.

백제 성왕의 전사

평양을 점령했던 백제는 신라의 배후 공격으로 주력군을 잃고 크게 패전하여 고립되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성왕은 신라에게 패망한 임나 가야의 유민을 불러들여 국원성(충주)을 떼어 주고 다시 왕국을 세우게 했다. 기원 554년에 임나와 군사를 합하여 어진성(진산)을 쳐서 신라병을 깨뜨리고 남녀 39천명과 말 8천 필을 노략하고, 나아가 고시산(옥천)을 쳤다. 신라는 새 영토의 사령관 김무력과 삼면산군(보은)고우도가 대병을 거느리고 달려와 신라병을 구출했다.

성왕은 정예병 5천을 뽑아 신라의 대본영을 야습하려고 구천(옥천, 백마강 상류)에 이르렀을 때, 신라의 복병을 만나 대패하고 성왕이 전사했다. 이 전쟁에서 백제의 좌평 4명과 사졸 29천 명이 죽거나 사로잡히니, 백제 전국이 크게 놀라 소동하였다.

신라는 백제를 계속 공격해서, 남으로는 비사벌(전주)을 쳐서 빼앗아 완산주를 신설하고, 북으로는 국원성을 쳐서 2 임나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소경(小京)으로 만들었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순수비

진흥대왕이 이와 같이 백제를 격파하여 지금의 양주충주전주 등, 곧 지금의 경기충청전라 지역의 요지를 얻고, 곧 이어 고구려를 쳐서 동북으로 지금의 함경도 등지와 지금의 길림 동북을 소유하니, 이 때에 신라 영토 확장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였다.

한양의 삼각산 북봉에 진흥대왕 순수비가 있는데, 이것은 대왕이 백제를 쳐서 성공한 유적이며, 함흥 초방원에도 진흥대왕의 순수비가 있는데, 이것은 대왕이 고구려를 쳐서 성공한 유적이다.

 <만주원류고><길림유력기>에 의하면, 길림은 본래 신라의 땅이고, 신라의 계림으로 인하여 그 이름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모두 진흥대왕이 고구려를 쳐서 강토를 개척하여 지금의 길림 동북까지 차지했던 한 가지 증거다.

 평양이 백제에 함락됐던 시기에, 신라의 요청에 응하여 고구려와 신라는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백제의 영토를 충분히 빼앗은 후, 진흥대왕은 고구려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여 남가슬라로부터 길림의 동북까지 습격하여 차지했다.

고구려는 부득이 신라와 싸워서 비열홀(안변 이북)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남쪽의 나머지 땅, 즉 장수태왕이 점령하였고 안장왕 이후에 다시 점령하였던 계립령(조령) 이서와 죽령 이서의 여러 군들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온달의 전사와 장한성가

신라가 당시 최고의 전략 요충지 북한산을 소유한 뒤로, 영원히 이 땅을 차지하자는 뜻으로 장한성가(長漢城歌)’를 지어서 노래하게 되자 고구려인들은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거의 해마다 군사를 출동하여 신라를 쳤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평원왕(559~590)의 사위 온달장군도 신라군을 공격하다가 아차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시인과 문사들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를 노래하고, 이두문으로 기록하여 사회에 퍼뜨려 전함으로써 일반 고구려인들의 적개심을 더욱 굳세게 하여,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신라와는 평화가 영원히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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