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백제 무령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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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백제 무령왕 이야기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6.09.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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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중국대륙을 경략한 근구수왕과 동성대왕

백제의 대표적인 전성시대는 기원 375년에 즉위한 근구수대왕과 기원 479년에 즉위한 동성대왕 치세이다. 두 대왕은 삼국 쟁패에 연연하지 않고 중국대륙으로 진출하여 남북으로 광대한 영토를 장악했다.

동성대왕 때는 근구수대왕 때보다 더욱 광대하였기 때문에 ‘구당서’ 백제전에 기록하기를 “서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려(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倭)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고구려 국경인 요수 서쪽 곧 봉천 서부가 다 백제 소유였고, 월주는 양자강 남쪽 회계(會稽)로, 회계 부근이 모두 백제 영토였다. 그리고 당시 일본 전국이 백제의 속국이었다.

동성대왕이 이같이 위대한 전공을 이루었으나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돌보지 않고 큰 궁궐을 짓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다. 기원 501년 11월에 사비 부여의 마포촌에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큰 눈을 만나서 그 곳에 머물렀는데, 그 때 왕을 원망하는 좌평 가림성주 ‘백가’가 보낸 자객이 찌른 칼에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때가 재위 23년이고 아직 40세가 되지 않았다.


무령왕의 전성시대

동성대왕이 비록 반란을 일으킨 신하 백가에게 암살당했으나, 그 아들 무령왕이 또한 영무하여 곧 백가의 난을 평정하고, 그해에 고구려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달솔 부여우영을 보내어 정예병 5천으로 고구려의 수곡성(신계)을 습격하여 점령했다. 그리고 수년 뒤에는 장령(서흥 철령)을 차지하여 성책을 세워 예의 침입을 방비했다. 이로써 백제의 서북 지경이 지금의 대동강까지 미쳐서 근구수대왕 시대의 옛 모습을 회복하였다. 

고구려의 최대 영토를 장수왕으로부터 물려받은 문자왕이 그 치욕을 씻으려고 기원 505년에 대병을 거느리고 침입하여 가불성에 이르렀다. 이에 무령왕이 정예병 3천으로 출전하니, 고구려 사람들이 백제의 군사 수가 적음을 보고 방비조차 하지 않았다. 왕이 기묘한 계책으로 급습하여 대파하니, 이 후 10여 년 동안 고구려가 다시는 남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무령왕이 그 틈을 타서 내외로 떠돌아다니며 놀고먹는 자들(도망병, 유랑자, 거지 등)을 몰아서 농사일을 시키고, 제방을 쌓아 논을 만들어 나라의 곳간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고, 서쪽으로는 중국, 서남으로는 인도, 대식(대식국, 사라센) 등의 나라들과 통상을 하여 문화도 상당히 발달하니, 대왕의 재위 기간 24년은 백제의 황금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동성대왕과 무령왕의 족보

백제 개로왕(21대)은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위례성을 빼앗기고 전사했다. 그 아들 문주왕(22대)이 웅진으로 천도한 지 3년 만에 신하 ‘해구’의 반란으로 죽자, 장자 임근왕(23대)이 13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서 반신 해구를 처단하는 영명함을 보였으나 3년 후 임근왕도 죽었다. 

그해(기원 479년)에 임근왕의 사촌동생인 동성대왕(24대)이 15세의 나이로 즉위했는데, 대왕의 이름은 ‘마모대’이고 일본에서 성장했다. 백제의 토착세력인 부여계가 오사카 곤지의 도움을 받아 마모대를 백제왕으로 맞이한다. 당시 야마토의 유라쿠왕은 스쿠시(키타큐슈)의 병력 500명으로 마모대를 호위했다.

무령왕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는 동성대왕의 둘째아들로 전한다. (일본서기는 임신한 개로왕비가 곤지와 함께 일본열도 아스카로 건너가던 중에 큐슈에 기착해서 낳은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무령왕은 아스카에서 ‘사마’로 불리며 성장했다.)  

아스카는 백제 13대 근초고왕(기원 346년) 이래로 백제인들이 개발한 곳으로 백제와 왜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곳이다. 근구수왕(14대)은 중국대륙에 광대한 영토를 만들었고, 100년 후 동성대왕(24대)은 훨씬 더 큰 중국대륙 영토를 장악하고 일본 전국을 복속시켰다. 무령왕(25대)은 백제 국내를 안정시키고 외교를 넓혀 원거리 통상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융성케 했다.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에 있다. 해마다 한국인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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