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독립유공자 후손 특별귀화증서 수여식…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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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독립유공자 후손 특별귀화증서 수여식…②
  • 차규근 변호사
  • 승인 2015.11.0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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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규근 변호사(법무법인 공존)
(지난 기사에 이어서) 비상이 걸렸다. 행사시간은 당일 오후 2시 30분. 장관님의 지시를 받은 것이 9시 전후였으니, 남은 시간은 5시간 남짓이었다. 바로 광복회에 연락하여 행사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축사를 요청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광복회측에서 오셔서 축사를 해 주시는 것으로 승낙을 하였다.(지금 기억으로는 회장님은 일정이 안 되셔서 부회장님께서 오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 만일에 당일 아침 뒤늦은 요청을 받은 광복회에서 ‘너무 늦어 안된다’고 했더라면 필자는 괜히 좋은 취지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다가 크게 질책만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광복회측의 깊은 양해로 행사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언론에도 잘 보도되었다. 이것이 법무부에서 매년 제헌절이나 광복절 즈음에 독립유공자 후손 특별귀화증서 수여식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올해 현재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허가를 받은 사람은 모두 932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분들이 모두 특별귀화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것은 아니다. 행사를 수시로 할 수 없다보니, 법무부에서는 매년 제헌절과 광복절 즈음에 귀화허가를 받는 분들을 위주로 귀화증서 수여식을 거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법무부에서 개최한 귀화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분들은 233명인데, 다음과 같다.

2006년 - 왕산 허위 선생의 후손(허 게오르기, 허 블라디슬라브) 등 33명

2007년 - 1919년 간도에서 철혈광복단을 조직해 일본 회사 등에 취직한 교포들에게 동맹사직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일제 현금 수송차를 습격해 빼앗은 현금 15만원으로 체코제 무기를 구입해 북로군정서에 제공했던 최이붕 선생의 후손, 1907년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신민회 등에 가입해 민족교육과 구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김동삼 선생의 후손 등 32명

2008년 -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을 하고, 1904년 7월에는 영국인 베델(Bethell)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는 한편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쓴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게재하기도 한 양기탁 선생의 후손 등 22명

2009년 - 대한국민회를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안무 선생의 후손, 차도선 선생은 1907년 홍범도 장군과 함께 의병활동을 전개한 차도선 선생의 후손 등 41명

2010년 - 1920년 무력항일군단인 대한독립군을 조직하고 사령관으로 일본군과 수차례 접전을 벌이다 순국한 이명순 선생의 후손 등 16명

2011년 - 1911년 한일합병에 항거해 중국 서간도로 이주한 뒤 국내에서 모험청년단을 조직해 주요시설물 폭파 등을 준비하다가 순국한 이근수 선생의 후손, 1919년 중국 의군단의 참모 겸 비서로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한 이경재 선생의 후손 등 13명

2012년 - 1919년 부산에서 ‘대한독립만세’ 현수막과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일본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박도백 선생의 후손 등 13명

2013년 - 1920년대 안동 비밀결사조직에서 활동하다 옥살이를 했던 독립유공자 고(故) 김술로 선생의 후손 등 17명

2014년 - 백범 김구 선생 주치의이자 1940년부터 광복군사령부 군의처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유진동 선생의 후손, 1912년 선교사로 입국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데 공헌하고, 3·1운동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윌리엄 린튼 선생의 후손(린튼 선생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는데, 미국 국적의 독립유공자 후손이 특별귀화 허가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받는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양기탁 선생의 후손 등 16명

2015년 - 김경천 장군, 이위종 지사, 이인 초대 법무부 장관 후손 등 30명

 필자가 과장으로 재직할 때 거행한 귀화증서 수여식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님 재직시 거행한 귀화증서 수여식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독립유공자 후손이 귀화증서를 받을 때 갑자기‘할아버님. 이제는 고생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흐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해외와 국내에서 힘들게 살았던 독립유공자 후손의 고된 삶이 생생하게 전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