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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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자라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4.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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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큰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은 ‘아기는 씻기는 만큼 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를 정성들여 씻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씻기면 정말로 다음날에는 좀 더 큰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아이는 더 맑은 모습으로 웃죠. 어른들의 정성이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아이가 아프면, 또 어른들은 아이가 크려고 아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이 펄펄 나니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아이가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아이가 아프고 난 후에는 실제로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되곤 합니다. 젖살도 빠지고, 어린 모습들을 조금씩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는 아픔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밤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데, 그것은 ‘성장통’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히는 모르나 관절이 자라면서 아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라는 것에는 아픔이 따르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습니다. 우리는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고 합니다. 사실 떡국을 먹는다고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겠지만, 음식이 나를 자라나게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음식이 소중한 것은 나를 자라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음식을 쓸데없이 낭비하거나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먹는 것은 자라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행위들입니다. 내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라는 일을 멈추고 있습니다. 난 어른이니까 다 자란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른이니까 육체적으로는 더 자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무리 밥을 먹어도 키는 더 자라지 않고 배만 나온다고 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안다는 농담도 그래서 나온 것이겠죠.

  허나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자라나야 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때가 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씻으면서 더 자라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내 더러움을 조금씩 덜어가며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조금 더 맑아진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기뻐하고, 나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도록 더 맑아져야 할 겁니다.

  살다 보면 아픔이 참 많습니다. 어릴 때는 육체적으로만 아픈데, 크면서는 온 몸과 온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아픔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픔은 두렵지만 고맙기도 한 것입니다. 굳이 아프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픔이 두렵지만도 않습니다.

  저는 ‘자라다’라는 단어가 ‘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 자라나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잘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잘’ 생각하고 행동도 해야 합니다. 내 어설픔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함을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모자라다’입니다. ‘모자라다’라는 말은 부족하다는 말도 되지만 어리석다는 뜻도 됩니다. 올바로 못 자랐다는 의미이죠.

  저는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자라나려고 노력하려 합니다. 저녁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난 오늘 얼마만큼 자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