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차라리 욕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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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차라리 욕을 해라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3.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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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욕’은 모욕적(侮辱的)인 말이다. 한국어에 욕이 발달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 경우도 있는데 욕에도 발달이라는 말을 써야하는지는 좀 씁쓸하다. 남을 모욕하는 말이 점점 진화하여 발달하였다고 표현하는 게 과연 좋은가? 다만 욕에 해당하는 표현이 많은지 적은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가능하리라 본다.
 
  한국어는 욕이 많은 언어냐고 묻는다면 아마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라는 말이 나쁜 의미로 쓰이지 않을 정도로 욕은 우리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기도 한다. 욕은 분명 모욕적인 말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기도 한다. 욕은 그저 언어의 윤활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의 감칠맛을 욕에서 찾는 이가 있을 정도다. 한국어 표현에 ‘욕먹어도 싸다’라든지 ‘욕먹을 짓을 한다.’는 표현이 있어서 욕을 하는 행위가 매우 일반적임도 보여주고 있다.
 
  욕은 음성적 행위여서 귀로 듣는 것이 일반적일 듯한데, 욕을 ‘먹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이 욕을 먹는다고 신기하게 생각한다. 하긴 한국 사람이 먹는 게 어디 욕뿐인가? 마음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귀도 먹고, 애도 먹고, 심지어 화장도 먹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보통 먹었다고 표현할 때는 몸속에 스며들어 와 있음을 의미한다. 듣는 것보다는 깊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한 귀로 들은 것은 한 귀로 흘러 보내도 될 것 같은데, 먹은 것은 우리 속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한국어의 욕을 보면 다양한 주제로 표현되고 있다. 학자들은 일본어와 대조하여 한국어에는 욕이 많은데 일본어에는 욕이 적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욕은 표현의 방식이기 때문에 언어에 따라 욕의 수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물론 욕이 많다고 해서 인성(人性)이 거칠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정확한 상관성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욕은 잘 안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거친 사람도 많다. 반면에 욕은 자주 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도 있다.
 
  욕의 내용을 보면 듣는 이가 가장 기분 나쁠 만한 이야기를 주로 소재로 삼는다. 욕에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을 욕하면 참을 수가 없게 된다. 서로 욕을 하다가 살인까지 이르렀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욕은 극도의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욕에는 종교적인 내용도 많다. 사실 종교적인 욕은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의 저주를 받으라느니, 지옥에나 떨어지라느니 하는 말은 종교에서는 금기시되는 말이다. 신을 함부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신을 들먹이면서 협박까지 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라는 종교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굳이 신을 언급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할 때여야 하지 않을까?
 
  한국어에는 ‘차라리 욕을 해라’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이 표현이 참 재미있다. 사람들은 욕이 나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욕보다 더 나쁜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욕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고 하는 말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온갖 미사여구를 썼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쁜 경우가 있다. 욕은 하지 않았지만 비꼬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욕이 아닌 말이 오히려 상처를 깊게 남기기도 한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쌓아두었다가 기어이 분노의 행동으로 폭발해 버리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인이 화가 많은 민족이라는 말도 있는 데 어찌 보면 화가 많은 사람들은 욕을 담아두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욕을 한바탕 하고’ 나니 시원해졌다는 사람도 있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욕이든 욕이 아니든 간에 담아둔 화가 폭발하여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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