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서 만난 한인들②
상태바
프랑크푸르트서 만난 한인들②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3.06.10 2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월아 도르트문트한인회장.

종합우승 이끈 최월아 도르트문트한인회장

지난 7~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광장에서 열린 월드·동포씨름대회에 출전한 독일대표팀은 한민족동포씨름대회 두 체급(남자 -90kg, -75kg)과 월드씨름대회 여자 -70kg체급에서 우승을 차지해 이번 대회 총 6개 체급 중 3개 체급을 휩쓸었다.

독일대표팀의 우수한 성적 뒤에는 최월아 도르트문트 한인회장의 뒷받침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이번에 독일팀 단장으로서 선수 7명을 인솔해 온 최 회장은 73년 독일에 온 간호사 출신이다. 지난해 부산대회에서도 선수들을 이끈 최 회장은 독일씨름협회장으로 오해 받을 정도로 이번 대회에서도 선수들이 최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어머니와 같은 섬세함과 푸근함으로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국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생소한 씨름대회를 위해 이렇게까지 개인시간을 쓰면서 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 사정으로 올해 세계한인회장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최 회장은 오랫동안 독일에 거주하고 있지만 가끔은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이국에서의 피할 없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재외동포들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정착해 살고 있더라고 고국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으며, 고국에서도 재외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이길 바라는 마음은 720여만명 재외동포들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독일인들, 보성 녹차에 완전 반했어요”

▲ 최승선 보향다원 대표.

재독총연이 프랑크푸르트 로스마르크트(Rossmarkt)에서 지난 5~9일 개최한 제1회 한국문화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홍보 부스는 의외로 ‘전통차’였다. 현호남 문예원장의 강력한 권유로 처음으로 전라남도 보성에서 전통차를 들고 독일을 방문한 최승선 ‘보향다원’(寶香茶園) 대표는 “프랑크푸르트에 오길 정말 잘했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최 대표는 “녹차, 발효차, 떡차 등을 비롯해 냉차를 신기해하며 너도나도 마시고 싶어 각종 문의가 쇄도했다”며, “어제 구매한 독일인이 차 맛이 좋다며 오늘 또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독일인들이 이렇게 녹차를 좋아할 줄은 미처 몰랐다”며 놀라워 했다. 이번에는 나노금이 들어가는 고급차만을 가져 왔는데 다음에는 한국인들이 보리차를 마시듯이 독일 일반가정에서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차들도 가져올 계획이다.

특히, 수만 명의 유럽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박물관들이 대거 몰려있는 마인강변에서 8월경 열리는 강변축제에 더욱 다양한 전통차를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독일인들은 비만체형이 많아 지방을 분해하고 중금속을 배출하는 효능을 가진 우리 전통차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장선옥 씨.

프랑크푸르트의 한국문화 전도사들

동포와 현지인들에게 한국화(동양화)를 가르치고 있는 장선옥 씨와 한지 판매(www.hanji.de)와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김명자 씨는 한인사회의 믿음직한 자원봉사자이자 고급 한국문화를 독일사회에 전파하는 민간외교관들이다.

한글학교에서 4년째 토요일마다 봉사하고, 문화회관에서는 목·금요일에 어르신들에게 3년째 한국화를 교육하며, 체험활동과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는 장선옥 씨는 92년 디자인 및 서양화를 공부하러 온 이른바 유학파다. 어릴적 배운 동양화 실력을 되살려 교민들은 물론 현지 독일인들에게도 한국화만이 갖고 있는 미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선옥 씨는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칠 때, 한문보다는 한글쓰기에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 것을 더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한글의 우수성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그림을 종이에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양초 등 다양한 입체적 재료를 통해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동양화와 서양화를 접목함으로써 동서양 문화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정형화된 전통예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 김명자 씨.

또, 만하임(Mannheim)의 한지 예술가로 입소문이 난 김명자 씨는 “독일에서는 한지공예가 아닌 한지예술로 부른다”고 강조했다. 현지인들이 예술작품의 관점에서 우리 한지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한지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는 명자 씨는 공식적인 지원 없이 고군분투하는 한인 문화인들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한국문화도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우리의 전통예술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인들에게도 충분히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장선옥, 김명자 씨가 증명하고 있다.

40년 동안 한국국적 유지해온 자원봉사자

독일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김화숙, 송경자 씨는 문예원(원장 현호남)이 그간 진행해 온 전통문화 교류 활동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멤버들로서, 동포들이 조직이 큰 한인회가 아니더라고 각자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소규모 활동들을 통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전통문화 홍보 차원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김화숙(왼쪽), 송경자 씨.

파독 간호사로 온 송경자 씨는 퇴직을 2년 앞두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공산품이든 예술작품이든, 또는 문화공연이든 싸구려에는 미련없이 고개를 돌리며, 비록 비싸더라고 고품질(high-quality)에는 주목하는 독일인들의 성향을 고려, 한국도 이제는 문화교류활동에 있어서 싸구려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아직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김화숙, 송경자 씨는 선거 때만 되면 관심 갖는척 하는 모국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지난해 재외선거관리 활동을 했던 송경자 씨는 선심성 공약은 절대 사절이라며, 파독 동포들이 모국을 방문했을 때 잠시 쉴 수 있는 숙소 형식의 작은 쉼터라도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건의사항을 전했다.

씨름 세계화에 매진하는 고려인 4세

▲ 서 윅토르 세계씨름연맹 국제부팀장.

무엇보다 이번 제4회 월드씨름대회에서는 남모르게 묵묵히 일하는 씨름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세계씨름연맹 서 윅토르(Shegay Victor) 국제부 팀장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4세다.

동방대학에서 국제경제를 공부한 그는 우연찮게 우즈베키스탄씨름협회장을 맡고 있던 교수님의 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세계씨름연맹 윤명식 총재와 인연을 맺게 됐다. 각국 선수 초청과 경기준비, 영어·러시아어 통역 등 제반 행정실무를 담당하다 보니 대회 기간에는 하루 한 두 시간만 잠을 자는 장외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우즈벡 현지에 부모님을 남겨둔 채 북부 아랄해 인근에 살았던 아내와 함께 부산에 1년 반 남짓 거주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국어는 물론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온 선수들을 다각도로 지원한 서 윅토르 팀장과 동고동락한 한국씨름연맹의 안동혁 홍보사업국 과장은 이번 대회 성공의 일등공신이었다고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 박건양 씨.

제3회 동포씨름대회 우승자, 박건양 씨

제3회 동포씨름대회 -75kg체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건양(James Pak·40) 씨는 독일에 온 지 8년째 되어 간다. 중소기업에 입사해 중국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지인의 소개와 추천으로 독일에 정착하게 됐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대회기간 동안 숙소와 경기장을 바쁘게 오가며 각종 잡다한 일들을 마다않고 적극 도왔다. 박건양 씨 외에도 파독간호사인 어머니를 따라 중학교 때 프랑크푸르트에 왔고, 현재 전시 디렉터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철우 사장과 상사주재원 생활에서 독립해 IT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공석진 씨도 이번 대회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자비까지 털어 선수단을 지원한 숨은 일꾼들이다. 

▲ 이철우 씨.

건양 씨가 밤늦게까지 씨름연맹의 업무를 보조하면서도 다음날 동포씨름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씨름선수 생활을 해서 기술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아직도 전라도 광주의 구수한 사투리가 남아 있는 그는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으로 돈(Money)에 대한 생각이 다름을 꼽았다. 한국사회는 돈 버는 것 자체에만 목적을 두고 집착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람을 놓칠 수 있다는 것. 독일은 세금이 많고 돈 벌기가 한국보다 더 힘들지만 시스템이 투명하다 보니 편법을 통한 성공이 거의 불가능하다. 부족함 속에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사람을 중히 여기는 문화는 우리도 곰곰이 성찰해 봐야할 화두라는 것이 건양 씨가 독일생활에서 느낀 소회다. 

프랑크푸르트 넘버원 한식당 ‘송학’

▲ 박종석 송학호텔 사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지역에는 수십 개의 한식당이 포진해 있다. 이번 씨름대회 선수단과 관계자들의 식사를 책임졌던 ‘송학호텔’의 박종석 사장은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유럽 굴지의 항공사인 루프트한자(Lufthansa)에 기내음식으로 한식을 처음 공급한 장본인이다.

퇴직 이후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12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형 레스토랑을 오랫동안 운영한 바 있으며, 현재 송학호텔은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건물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은 송학호텔은 한국에서 온 상사주재원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필수 코스라고 한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면서 맛과 친절로 어우러진 송학의 서비스를 한 번 맛본 한인들은 또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단골손님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을 위해 숙식 제공은 물론 높은 급여를 주며 한국 젊은이들이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주고 있다.

동포씨름대회에 출전하는 한인들보다 월드씨름대회에 나가는 외국인 선수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대회 기간 중에는 육류와 채소 등 각종 음식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에서 온 유럽선수들과 중앙아시아 선수들이 식사를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니 혀로 느끼는 맛은 국경을 초월하는 듯하다.

▲ 이봉철 유럽총연 수석부회장.

탁구계 원로, 이봉철 유럽총연 수석부회장

스웨덴에 25년 거주하고 있는 이봉철 재유럽한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78·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고문, 제33대 스웨덴한인회장, 유로리상사 대표)은 유럽총연에서만 14년 넘게 봉사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2,500여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고 맞벌이 부부가 90%라고 한다. 육군 소속 탁수선수를 거쳐 국내 고등부 코치생활과 대만, 일본, 태국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여자 탁구계를 주름잡은 정현숙, 나인숙 등을 후배로 둔 탁구계 원로이다.

탁구 강국 스웨덴을 자주 왕래하다 보니 탁구용품을 비롯한 체육용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관련 수출입 업무를 본격 시작했다는 이 수석부회장은 지금도 스웨덴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연령별 탁구대회에서 매번 3위권 안에 드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쾰른 인근에 거주하는 박대희 전 독일여자배구대표팀 감독과는 오랜 친분을 유지하며 여름과 겨울, 1년에 한 번씩 휴가차 상호 방문하고 있다.

월드씨름대회 지원활동 및 박종범 유럽총연 회장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박대희 전 감독과 함께 노장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명제를 유감없이 입증하고 있다. 그는 씨름에 대한 전망으로 정부 관계자 및 정치인들이 조금만 협조 지원한다면 태권도보다 훨씬 빨리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담당자들이 스포츠계 원로의 통찰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김병헌 대한씨름협회 실무부회장.

한국씨름과 스위스 쉬빙겐이 만나다

사단법인 대한씨름협회 김병헌 실무부회장은 뉴욕에서 30년 넘게 거주한 바 있는 재미동포 출신이며, 현재 한국에 다시 들어와 인천에서 규모 있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답게 복수국적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많았고, 미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다양한 이슈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세계씨름연맹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회를 개최함에 따라 지원차 함께 동행한 김 부회장은 알프레슬링(Alp wrestling)이라고도 불리는 스위스 민속경기 ‘쉬빙겐’(Das Schwingen)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취리히에 잠시 들렀다. 쉬빙겐은 우리 씨름과 거의 동일하게 원형 모래판에서 샅바와 같은 천을 잡고 엎드린 자세로 시작하며, 우승자에게는 황소를 상금으로 줬다고 한다. 

주로 스위스 산간 지방에서 성행한 쉬빙겐은 목동들이 외로울 때 서로의 힘을 겨루는 데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지며, 특히 국가가 내분 중일 때 스위스 국민의 민족자결 의식을 강화하고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한국 씨름인들은 스위스 쉬빙겐이 분열된 국민들의 화합을 도모했듯이 한민족 고유 민속문화인 씨름이 국내외 한민족 동포들을 하나로 묶는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고영민 기자]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