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돕기 모금 운동에 기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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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돕기 모금 운동에 기대 커”
  • 정리=이종환 기자
  • 승인 2009.05.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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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현지 리포트 / 목단강 한인회장이 말하는 ‘해림시 취업사기 사건과 그 이후’
▲ 흑룡강 해림시에서 취업사기사건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제공=목당강한인회)

지난 15일 사적인 일로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간 참에 목단강 한인회 엄재봉 회장을 만났다. 목단강 한인회는 목단강시와 인근 해림시의 한국인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다.

이 한인회의 엄회장은 지난 4월 하북성에서 열린 중국한인회 전체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해림시 취업사기사건’으로 인해 현지의 한국인들의 신변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대책을 세워줄 것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나눠줘 인상이 깊었다.

취업사기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여모씨(48)라는 한국인이 ‘청와대 직속 국가전략연구소장’ 등의 명함을 들고 2006년 4월부터 2008년 봄까지 흑룡강성 해림시에서 조선족과 한족 790명으로부터 한국에 취업시켜주겠다며 1천42만위안(21억상당)을 가로채 한국으로 달아났다.

이로 인해 현지의 피해자들이 이혼에 내몰리는 등 가정파탄을 빚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면서 중국내에서 반한감정이 확산된 사건이다. 엄회장은 내가 묵던 하얼빈의 완다 홀리데이인 호텔로 찾아왔다. 목단강에서 자동차로 3시간반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두사람을 동행해 왔다. 한 사람은 해림 시정부 국장급 인사이고, 또 한 사람은 사기사건인줄 모르고 취업자 모집책으로 일했다가 가해자 아닌 가해자가 돼 낭패를 본 사람이라고 했다. 현지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이 두 사람을 동행했다고 한다.

우선 이번 만남이 재중국한국인회(회장 정효권)의 공식결정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싶다. 하얼빈 출장 때 엄회장을 만나 ‘해림시 취업사기사건 이후’의 현지 상황을 들어보겠다고 정효권회장한테 연락은 했으나, 현지 조사를 위해 공식 파견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밝히는 것은 해림시 사건이 그만큼 민감하고, 재중국한국인회로서도 손을 대기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목단강 한인회 엄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얼굴에 붕대를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왜 그 모양일까 하는 의문은 금새 풀렸다.

“얼마전 한인회 임원회의를 하고 나가는데 어둠속에서 누가 나타나 발로 차고 때려서 타박상을 입었지요. 이런 얼굴로 나타나 죄송합니다”

그는 당시 찍은 몇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차마 공개하기 민망할 정도로 얼굴이 상한 사진이었다.

“누가 제게 그랬는지는 아직 몰라요”라고 말하는 엄회장은 “이처럼 이유없이 어둠 속에서 폭행당한 게 이번이 두번째”라고 말했다.

해림시에 투자기업을 운영한 지 10여년이 됐지만, 이같은 일은 올 1월에 한인회장이 되고 나서 처음 겪었다는 것.

엄회장은 해림시에서 수영장과 사우나, 찜질방이 딸린 ‘고려성’이라는 헬스오락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밤에 수영장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다 깨뜨리는가 하면, 사우나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등 영업을 방해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수영장을 이용하다 깨진 유리에 발을 다치는 사람까지 나와 수영장 물을 빼고 영업을 멈추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목단강시와 해림시 통틀어 100여명의 한국인이 와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중 저와 비슷한 경험을 당했거나, 혹시 당할까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지요”

엄회장과 동행한 임봉춘씨도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는 해림시 민족사무국 주임을 지낸 공무원 출신으로 한국취업 지원자를 모으는 중국측 모집책이 됐다가 사기사건으로 결말이 나는 바람에 ‘패가망신’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취업사기라고는 생각도 안했지요. 특히 당시 한인회장으로 있던 유모씨가 여모씨(사기사건 주범)를 소개해서 모두들 쉽게 속아넘어갔지요”

그는 그후 사기사건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자 등쌀에 못이겨 집을 팔아 보상을 해줘야 했다고 한다. 당시 여모씨를 현지인들에게 소개했던 한인회장 유모씨도 사기사건이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모씨를 소개하는 바람에 현지 사람들이 쉽게 속았다는 점에서 한인회가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엄회장은 자신이 여러 차례 폭행당하고 자신이 경영하는 고려성에 돌이 날아드는 것도 ‘한인회’의 회장이 된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는 회장이 된 후 하얼빈에 있는 중국동북삼성한인회연합회(회장 장치훈)를 찾아 이 문제를 상의했다고 한다. 동북삼성은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으로, 이 지역에 있는 한인회 연합회장을 마침 하얼빈에서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장치훈 연합회장이 와서 5일간 현지 조사를 하고 갔으나 지금까지 뚜렷한 방안을 못 찾고 있다가, 지난 4월 중국 한인회 전체 모임에 가서 현지 사정을 호소했다는 게 엄회장의 변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790명에 이르고, 이중 85%가 한족이다. 나머지 15%는 조선족 동포라고 한다. 이들 상당수가 한국으로 취업을 떠나는 수속비 4만5천위안(900만원 상당) 가운데 2만~3만위안을 담보금으로 냈다가 사기를 당했다.

이 돈은 가구당 월수입이 1000위안(20만원)이 안되는 현지 실정에 비춰보면, 가정파탄이 날 수밖에 없는 액수다.

“이중 180명이 아주 곤란해요. 이혼하는 가정이 속출하고, 자살시도도 수차례 일어났어요”

엄회장은 이렇게 얘기하며,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집에 이런 일이 생기다보니 학교도 못가는 아이들까지 나왔다”며, “다행히 해림시 정부가 이 아이들한테 학비를 면제해줘서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정부가 여러모로 신경써 주는 것이 고마워요. 하지만 시정부로서도 피해자들의 항의를 어떻게 하지 못하지요. 우리 영사관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렇게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엄회장과 같은 현지의 한국인들이 피해를 입고, 또 현지인 사기사건 피해자들의 형편도 더욱 악화되고만 있다. 이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중국 전역 54개 한국인회의 총본부인 재중국한국인회가 준비하는 ‘해림시 피해자 돕기’운동이 이를 풀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얼빈=장흥석 해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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