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지내다 보내다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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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지내다 보내다 살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4.04.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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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힘든 일, 어려운 일, 슬픈 일, 고통스러운 일, 미치겠는 일, 죽고 싶은 일, 괴로운 일, 견딜 수 없는 일, 어처구니가 없는 일, 화나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는 지나갔으면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인사말로 ‘잘 지내.’라는 말을 합니다. ‘잘 지냈어요?’가 과거에 대한 인사라면 ‘잘 지내.’는 기원을 담은 말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이 잘 지나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가게 하기 바랍니다. 힘든 일이 지나가고 나면 좀 나아질 겁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질 수도 있고, 몸에 한껏 들어갔던 긴장도 풀리겠지요, 우리는 그런 지나간 시간을 과거(過去)라고 합니다. 지날 과에 갈 거가 합쳐진 말입니다. 인사말에 과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다 좋은 과거가 되기 바랍니다.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한편 우리는 시간을 보낸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경우도 있고, 즐겁게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은 들을 때마다 어색합니다. 휴일은 보내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인 사람도 많겠지요. 월요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사람도 봅니다. 어차피 시간은 가게 마련이니 이왕이면 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약간은 의인법 같은 느낌입니다. 세상 사람은 이별하기 마련이듯이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내드려야지요. 이왕이면 기쁘게 보내면 좋겠네요. 기쁘려면 함께한 추억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말에서 지내다, 보내다 말고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는 ‘설을 쇠다’의 쇠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대단히 특이한 표현입니다. 다른 날에는 사용하지 않고, 설에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명절을 ‘쇠다’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주로 추석이나 다른 날에는 쓰지 않습니다. 동사가 어떤 목적어와만 함께 쓰인다면 그것은 두 단어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서 ‘신다’는 ‘신’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밟다’도 ‘발’과의 관련성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쇠다의 경우는 설과 관련이 있는 단어가 아닐까 추론합니다. 설은 나이를 나타내는 살과 같은 어원이고, 해와 관련된 말로 보입니다. 일년이 한 해이고, 한 살, 한 설인 셈입니다. 따라서 빛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을 쇠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원을 찾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지내다, 보내다, 쇠다 말고 ‘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인사말에서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저는 이 살다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사람이라는 말과 살다라는 말은 같은 어원입니다. 따라서 사람으로 사는 겁니다. 사람답게 사는 겁니다. 그런 것을 ‘삶’이라고 합니다. 인생이지요. 축생(畜生)으로 살아가는 것을 ‘짐승’이라고 하니 사람다움은 삶의 기본조건입니다.

살다라는 말을 조금 자세히 풀어서 쓰면 ‘살아가다’가 됩니다. ‘가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앞이라는 지향점을 봅니다.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앞을 향해서 가는 겁니다. 긍정적(肯定的)이고 전향적(前向的)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살다에 피동의 표현을 더하면 ‘살아지다’가 되는데, 수동적인 삶입니다. 남에게 이끌려서 사는 삶이니 늘 힘들게 지내고,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삶은 그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의미 없이 지나가게 하지 말고, 그저 보내버리지만 말고 뚜벅뚜벅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 인사말에는 ‘사세요’가 많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즐겁게 사세요. 멋지게 사세요. 건강하게 살고, 웃으며 살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그게 잘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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