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긍정언어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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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긍정언어학의 시대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4.03.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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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긍정언어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새로 설정된 학문 분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진행하는 연구모임에서 만든 학문 분야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언어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효용성이 커지고 있다. 언어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동 번역이나 통역의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향후 통번역 성장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며, 그 영향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언어교육학의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시대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자동 번역과 통역의 시대에 과연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인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취업이나 진학에 큰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학에서 인공지능의 기초가 되는 대규모 언어자료 수집이나 통번역을 세밀하게 가다듬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응용언어학으로서 언어교육학은 어떤 변화를 겪어야 할 것인가?

심리학에서는 불안이나 정신질환 등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다. 마틴 셀리그만은 이렇게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긍정심리학을 열었다. 마음챙김, 알아차림, 웰빙 인지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행복한 삶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심리학의 논의는 언어학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도구를 공부하는 것뿐 아니라 언어의 공부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긍정언어학은 긍정심리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언어학에 응용한 분야이다. 긍정언어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발생한 언어교육의 위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해서 언어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언어교육의 역사를 돌아보면 모국어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지식의 습득과 전수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인류의 지적 성취를 배우고, 이를 소화하여, 후세에 전하는 역할이었다. 당연히 의사소통보다는 읽기와 쓰기 중심의 언어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문은 배웠지만 읽고 쓸 수 있었을 뿐, 다른 나라 사람과 말이 통한 것은 아니었다. 필담이라는 형식은 그래서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었다.

산업혁명의 시대가 오고, 인류의 이주가 활발해지면서 언어교육은 단순히 책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아서 숨 쉬게 된다. 이는 문어가 아닌 구어에 교육의 초점이 옮아감을 의미한다. 말하기, 듣기 교육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예전에 문어 위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읽기와 쓰기에는 능하지만 구어의 사용에서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구어 의사소통의 시대인 것이다. 청각 구두식 교수법과 의사소통 중심의 교수법은 주로 구어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많은 부담이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해결되면서 문어이든 구어이든 더 이상 교육과 학습의 필요성이 적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향후 외국어교육의 필요성은 사라지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긍정언어학과 관련이 된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의사소통뿐 아니라 행복감을 준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조사해 보면 대부분 행복감이 올라가고, 삶의 우울함이나 불안에서 벗어나게 된다. 몇 가지 설문조사에서 이런 결과는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학습하는 일본의 중년 여성의 경우 우울감이 해소되고, 행복감이 올라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어가 취미인 학습자일수록 즉, 학습의 부담이 적을수록 행복감은 올라간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학습자를 조사해 본 결과도 행복감이 높아짐을 알 수 있었다.

긍정언어학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행복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학습자 간의 활동, 치유의 말하기와 글쓰기, 좋은 글 읽기 등 많은 긍정 활동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긍정언어학의 시대가 올 것을 확신한다.